
당신과 맨발로 흙길을 걷고 싶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 걸을 때마다 시원한 듯 낯설고 더러 아프기도 한 촉감을 지그시 느끼게 해주고 싶다. 맨발로 흙길을 걷다 보면 잃어버린 줄 알았던 몸의 쾌감이 깜짝 깨어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오갔는지 흙길이 판판하다. 누군가 걸었을 길에 내 맨발을 올려놓으니 마음이 흐뭇하다. 당신도 맨발을 딛으며 볼에 미소를 띠리라. 소나무와 편백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 판판하게 이어지다가 오르막이고 땀을 좀 흘렸는가 싶으면 어느새 평지인 흙길. 바람이 볼에 살갑다. 고1 때 만난 가시내 숨결도 이랬던 것 같다.
지금은 토요일 오전 8시, 반백의 맨발이 내 곁을 스친다. 초면이어도 낯설지 않다. 때가 되면 찰지게 만날 사람인 것이다. 여긴 선인들이 오갔던 길. 지게질에 숨이 차면 여기서 다리쉼 하며 담배 한 대 물었으리라, 농사일에 이골난 육신을 바람에 맡기고 애기참나무 위를 팔랑거리는 노랑나비와 눈 맞추기도 했으리라. 아줌마들이 맨발로 깔깔깔 다가온다. 무슨 얘긴지 알 수 없지만 흙길에 옛 농담을 들키며 웃는지도 모르겠다. 집들이 문화가 한창이던 1990년대, 친구네가 차려낸 음식을 맛있게 먹어놓고도 “먹은 것 없이 배만 부르네”라고 눙치자마자 “차린 것 없이 돈만 들었네”라고 되받아치던 농담. 사실과 정반대로 헛배만 불렀고 헛돈만 썼다는, 이 깜찍한 반어(反語)를 즐기던 해학 속엔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우리 삶이 풍자적으로 섞였다고 깔깔깔 어제를 감싸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은 어디 계신지. 귀울림병을 끼고 산다는 당신. 업무에 시달리다 못해 목이 뻣뻣해져서 별을 못 본다는 당신. 은반지를 아끼는 당신. 월말에 조금씩 모은 말줄임표가 친구라는 당신. 군대에서 곡괭이 자루로 얻어터지는 꿈을 또 꾸었다고 어이없어하던 당신. 연필 글씨를 좋아하는 당신. 손톱에 봉숭아 꽃물 들이며 곱게 웃던 당신. 웃을 때마다 눈매에 어리는 열여덟 살로 실뜨기하다가 시간을 보자마자 쉰 살로 돌아오는 당신. 자디잔 풀꽃에 사글세 들고 싶은 당신.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이 느자구없는 풍토를 배롱꽃 때깔로 지우고 싶은 당신. 고구마순 김치가 땡기는 당신. 불알 두 쪽만 남았어도 오줌발 끝까지 털자는 당신. 눈물이 먼저 오는 기억을 잠그듯 막걸리 사발을 단숨에 비우던 당신.
이런 당신 덕분에, 삶에 대한 애증과 연민을 껴입은 이름 모를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당신과 이 흙길에서 만나면 참 좋겠다. 새벽 기운이 남은 오솔길에서 바짓가랑이 걷어붙인 철부지가 되고도 싶다. 눈썹이 짙게 빛나던 시절이 또 오랴만, 돈이 신앙이라는 시절에 누구에게나 평등한 바람과 햇살과 그늘을 닮기가 쉬운 일이랴만, 걸을 때마다 눈이 맑아지는 흙길. 구두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걷는 게 무작정 살맛 나는 이 오솔길에서 당신과 함께 몸의 새 눈을 틔우고 싶다.
잡목숲에 헹궈진 바람이 서늘하다. 당신과 만나고 싶은 소망을 전해주는 것 같다. 바람의 이런 낌새를 알아채는 몸은 소중하다. 당신 몸도 금쪽같으리라. 삶은 내게 선물이 아니었고 외로움도 귀찮다고 말한 근거가 몸이었으되, 지난 십수 년 적막이 끼닛거리였어도 조금 더 견디자는 삶의 불씨가 튀어나온 곳 또한 기억을 간직한 몸이었기 때문이리라.
늘 그리운 당신, 맨발에 흙길 어떠신지.
이병초 시인·전북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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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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