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의 맥주를 마시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죠.”
일본 도쿄도 주오구 긴자역 한쪽의 지하통로. 길게 늘어선 대기줄을 바라보던 직장인 사토 미츠키(37)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가 바라본 대기 줄의 다른 한쪽 끝에 위치한 건 다름 아닌 맥주 바. 일본 맥주회사 ‘삿포로 맥주’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맥주 바인 삿포로 블랙라벨 ‘더 바’의 입구였다. 그는 “일본에선 삿포로 블랙라벨 맥주를 ‘어른의 맥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2019년 7월 문을 연 ‘더 바’는 삿포로 맥주가 직접 운영하는 스탠딩 비어 바다. 이곳에선 ‘가장 맛있는 맥주는 그날의 첫 잔’이라는 컨셉에 따라 한 사람당 하루에 딱 두 잔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두 잔 이후는? 인근의 다른 곳을 찾아 나서도록 안내한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맥주가 세 종류니 적어도 두 번은 방문해야 모든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잠깐. 맥주는 원래 어른의 전유물 아니었나. 어른들만 마실 수 있는 맥주에 굳이 ‘어른의 맥주’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는 뭘까. 이는 삿포로 맥주가 프리미엄 제품인 블랙라벨에 ‘멋진 어른에 대한 동경’이란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삿포로 맥주는 2010년부터 ‘어른 엘리베이터’라는 일련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연령대별로 ‘멋진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
청량감에 소구하는 주류 업계 관행과는 사뭇 다른 이 같은 행보는 이후 15년간 계속됐고 그사이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영화감독 안노 히데아키, 축구선수 하세베 마코토 등 다양한 연령대의 유명인사들이 질문에 답했다. 최근에는 『노란 집』 『헤븐』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49세 대표로 나섰다. 그의 대답은 ‘어른이란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이었다.
어른의 맥주를 기대하는 고객들에게 매니저는 완벽한 맥주로 화답한다. 이곳 매니저들은 매일 맥주 관을 청소하고 유리잔도 맥주와 동일한 온도인 2~6도로 냉각해 준비한다. 완벽하게 준비된 유리잔에는 딱 한 번만 맥주가 담기고 재사용되지 않는다. 덕분에 바 매니저의 등 뒤로 쌓인 유리잔들은 조명과 어우러지며 신전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을 낸다.
맥주를 이렇게까지 해서 마셔야 하나. 의문이 사라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숙련된 매니저들의 손길로 잔에 담긴 맥주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거품 아래서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 마실 때마다 층층이 쌓이는 레이싱(엔젤링)과 거품 아래 별처럼 떠오르는 기포들은 맥주를 ‘이렇게까지 해서’ 마셔야 한다고 항변한다. 마쓰오 에이지 ‘더 바’ 매니저는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잔 따르는 맥주지만 손님들에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첫 잔”이라며 “완벽한 한 잔을 제공하기 위해 매일 1000개의 유리잔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주 한 잔에 완벽함을 담아내는 이런 장인 정신은 삿포로 맥주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6년 설립된 삿포로 맥주는 일본 내에서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맥주 회사다. ‘일본 맥주의 역사가 곧 삿포로의 역사’라는 자부심이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후 삿포로 맥주는 일본 정부의 통합 방침에 따라 오사카 맥주(현 아사히 맥주)와 일본 맥주 등과 합병했다가 1949년 아사히 맥주가 분할된 뒤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50년 전 창립된 뒤 일본 맥주와의 합병 등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온 역사는 도쿄도 시부야구 에비스역 인근에 위치한 ‘에비스 브루어리 도쿄’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곳은 삿포로 맥주의 프리미엄 제품 라인인 에비스 맥주 공장이 있던 곳. 과거에는 시모시부야무라(시부야 아래 지역이란 의미)로 불리던 이 지역은 에비스 맥주 공장이 자리 잡은 이후 에비스로 불리게 됐을 정도로 일본 맥주 역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맥주 공장은 1988년 폐쇄됐지만 부지에는 에비스 가든플레이스가 들어섰고, 일본인들은 여전히 이 지역을 에비스라 부른다.

맥주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에비스 맥주기념관이 들어섰다. 삿포로 맥주는 지난해 양조 설비를 다시 가동하기로 결정하고 맥주기념관을 에비스 브루어리 도쿄로 재개장했다. 이곳에서 만난 맥주 장인 이가모토 히로시는 삿포로 본사가 인정한 ‘맥주 장인’이다. 1979년부터 삿포로 맥주에서 근무한 그는 올해 67세로 한국이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지만 여전히 후배 매니저들의 교육을 맡고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마신 손님의 행복한 표정을 보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신념을 갖고 나답게 살아가는 어른.’ 더 바의 메뉴판과 미디어월에 적힌 이 메시지는 일본의 맥주 장인처럼 조용히 신념을 지켜나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니었을까.
멋진 어른이 되지 못한 밤이면 도쿄의 삿포로 맥주가 생각날 듯싶다. 삿포로 맥주는 2023년 8월 후쿠오카와 오사카에서 한시적으로 이벤트 바를 열기도 했지만 현재는 일본 내에서 ‘더 바’를 운영 중인 곳은 도쿄뿐이다. 대신 한국에선 지난 7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 스탠드’가 문을 열고 한국의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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