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의 은밀한 서재…'가지'와 사랑에 빠진 위스키[르포]

2025-11-01

"위스키의 가장 완벽한 짝은 채소입니다."

고개를 갸웃했다. '위스키'하면 흔히 떠오르는 페어링은 초콜릿, 치즈, 혹은 묵직한 스테이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과일·채소 소믈리에'는 단호했다. 위스키와 채소라니. 선뜻 상상이 가지 않는 조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6일 서울신라호텔 1층에 자리한 '더 디스틸러스 라이브러리'(The Distillers Library)를 찾았다.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시끌벅적한 바(Bar)가 아닌 고요하고 은밀한 '위스키 서재'에 가까웠다. 벽면을 가득 채운 희귀 위스키 컬렉션 사이로 '오디세이 오브 플레이버, 프룻, 베지터블 앤 위스키(Odyssey of Flavors…)' 클래스에 참석한 소수의 사람만이 조용히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이건 제 개인 술입니다"…비밀의 서재에서 만난 위스키

"미리 힌트를 드리자면, 오늘 비밀 게스트로 준비한 위스키는 이미 단종된 한정판입니다. 회사에도 재고가 없어 제 개인 소장품을 가져왔습니다. 제 술이니까 마음껏 드셔도 좋습니다."

배대원 글렌피딕 브랜드 앰배서더의 재치 있는 한마디로 클래스의 문이 열렸다. 그는 위스키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글렌피딕'(Glenfiddich)이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사슴의 계곡'(Valley of the Deer)을 뜻한다는 어원부터, 위스키의 심장인 '물'을 지키기 위해 수원지 '로비 듀'(Robbie Dhu) 주변의 땅 150만 평을 통째로 사들였다는 130년의 집념까지.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니었다. 1963년, 모두가 블렌디드 위스키에만 빠져있을 때 '스트레이트 몰트'(Straight Malt) 8년산을 들고 미국 뉴욕에 건너가 '싱글 몰트'라는 카테고리를 전 세계에 알린 글렌피딕의 개척 정신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배 앰배서더는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는 '비법'도 전수했다. "와인처럼 코를 박고 향을 맡으면 높은 알코올에 후각이 마비됩니다. 입을 살짝 벌리고 코와 입으로 동시에 가볍게 숨을 들이마셔보세요. 알코올의 자극 없이 향을 훨씬 부드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잔에 입을 살짝 벌리고 향을 맡으니, 40도가 넘는 알코올의 자극 대신 23년산 '그랑 크루'의 섬세한 꽃향기와 과일 향이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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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와 위스키의 만남"…편견을 깨는 '맛의 신세계'

본격적인 '맛의 항해'는 세계 3대 요리학교 '츠지조리학교' 출신이자 과일·채소 소믈리에인 안진석 셰프가 이끌었다. 그는 "블랙핑크 제니의 프라이빗 파티 케이터링을 맡기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페어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오늘 제안을 참고해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재미를 느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첫 번째 페어링은 샴페인 캐스크에서 숙성한 '글렌피딕 23년 그랑 크루'와 '랍스터, 샤인머스캣 소스, 오세트라 캐비어'였다. 안 셰프는 "샴페인 터치가 들어간 섬세한 풍미라, 여리여리한 해산물과 포도 계열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샴페인의 상큼함을 머금은 위스키가 랍스터의 단맛과 캐비어의 감칠맛을 만나자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하이라이트는 두 번째 잔이었다. 이날의 주인공이자 가장 도발적인 조합, '글렌피딕 22년 그랑 코르테스'와 '가지를 곁들인 비프 타르타르'가 나왔다. 스페인 팔로 코르타도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한 22년산은 그 자체로 말린 과일과 다크 초콜릿의 강렬한 풍미를 뿜어냈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며 구운 가지를 먼저 입에 넣었다. 이어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는 순간, 편견은 산산조각 났다. 짭조름하게 구워낸 가지의 스모키한 불향과 부드러운 식감이 위스키의 스파이시함과 만나자, 놀랍게도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의 풍미가 완성됐다. 위스키의 강렬함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소의 감칠맛으로 그 풍미를 증폭시킨 것이다.

마지막은 럼 캐스크에서 4개월간 추가 숙성한 '글렌피딕 21년 그랑 레제르바'였다. 럼의 재료인 사탕수수처럼 달콤한 바닐라 향이 특징인 이 위스키는 '파인애플 바닐라 샹티 크림' 디저트와 만났다. 배 앰배서더가 "개인적으로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통을 퍼먹으며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귀띔할 만큼, 달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조합이었다.

"어릴 때부터 딸기에 설탕을 묻혀 손으로 조물조물 으깨 보온병에 얼려가서, 학교에서 나눠준 흰 우유에 타 먹곤 했습니다. 믹서기로 갈면 그 맛이 안 나요. 꼭 손이 들어가야죠." 안 셰프의 '딸기 우유' 추억담은 그가 왜 '맛'에 집착하는지 보여주는 일화였다. 결국 이날의 클래스는 단순히 비싼 술을 마시는 자리가 아니었다. '가지'라는 일상의 식재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딸기 우유'라는 추억에서 맛의 본질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신라호텔의 '은밀한 서재'에서 보낸 하룻밤은 위스키에 대한 낡은 편견을 완전히 깨부순, '맛의 오디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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