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는 2021년 전기요금은 세금이 아니라고 명확히 판단했다(사건번호 2017헌가25). 한 시민이 누진제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전기요금이 사실상 조세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전기요금은 전기를 사용한 대가일 뿐, 반대급부 없이 부과되는 세금과는 다르다”라고 선을 그었다.
법적 구분과는 달리 대중에게 전기요금은 여전히 ‘전기세’다. 공공기관이 부과하고 납부를 회피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를 ‘전형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으로 설명한다. 어떤 대상이 전형적인 이미지와 유사하면 깊이 따지지 않고 같은 범주로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전기요금을 세금처럼 여기면 소비자들은 인상에 더 큰 부담을 느끼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동일한 금액이라도 세금 인상은 일반 가격 인상보다 소비를 최대 7배까지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전기요금에 대한 민감한 인식은 정치적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웨덴 웁살라대와 동핀란드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큰 지역에서 전기요금이 오르면,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스웨덴민주당(SD)의 득표율이 높아졌다. 요금 인상에 대한 불만이 탈탄소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 정치권이 전기요금 문제에 신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기적인 유불리를 넘어 구조적 해법을 마련하려면 압도적인 지지율 같은 ‘정치적 여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대선과 총선에서 주요 정당 간 격차는 5%포인트 이내였고, 수도권에서는 수백 표 차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산업용 요금에 부담을 전가해 왔다. 그 결과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높아졌고, 2022년 이후 철강·시멘트·디스플레이·섬유 등 전기요금 민감 업종의 부담은 평균 36% 이상 늘었다. 산업계는 PPA(전력직접구매계약) 확대나 자체 발전소 구축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구조의 왜곡도 심화하고 있다.
최근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인 이재명 후보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과 소비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RE100에 대한 대응 등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 공약을 제시했다. 그런데 유럽 사례에서 보듯, 재생에너지 확대는 시스템 전환 비용을 수반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은 모든 정치세력의 초당적 과제다. 실현 가능성과 비용 부담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 필수적이며, 특히 주택용 전기요금 문제에 대해서는 투명한 소통이 필요하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