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 차곡차곡 은은한 단맛! 음미할수록 귀한 몸 된 기분

2025-05-31

고문헌 속 K디저트 되살리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 디저트 살롱’에서 즐기는 전통차와 병과

테이블 위로 빛깔 좋은 홍화차와 오색 병과(떡과 과자)로 꾸려진 다과상이 차려진다. 매작과, 건시단자, 배정과… 은빛 다기 위에 정성스레 차려진 병과들은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지난달 서울 소공동 신세계 더 헤리티지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신세계 디저트 살롱’(디저트 살롱)의 다과 세트다.

디저트 살롱은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 전통차와 병과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겉모습은 현대적이지만 이곳에서 선보이는 먹을거리들은 모두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K디저트’가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고문헌 속에서나 보던 우리 차와 병과를 편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 특별한 공간의 탄생 뒤에는 신세계한식연구소 한희정 팀장과 전통 병과 연구가 서명환 셰프가 있다. 2021년 설립된 신세계한식연구소는 한국의 자연과 계절, 식문화 유산을 연구하며 다양한 한식 공간을 선보여왔다. 이번에 문을 연 디저트 살롱은 한식 레스토랑 ‘자주한상’과 한식 식자재를 판매하는 ‘발효:곳간’에 이은 세 번째 한식 공간. 정통 한식 디저트로 우리의 식문화 유산을 선보이는 곳인 만큼 공간 구성과 메뉴 설계에 공을 들였다. 한 팀장은 한식 디저트를 ‘한식의 마무리이자 완성’이라고 말한다.

신세계한식연구소의 3번째 한식 공간

낯설지만 깊은 매력 가진 디저트 소개

“한식의 품위·친근성 조화에 중점”

“우리 전통 떡과 한과를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는 숙제를 늘 가지고 있었어요. 한식이란 요리가 시간과 정성, 노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중 가장 어려운 게 한식 디저트거든요. 재료 관리와 공정이 까다롭고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해요. 한식의 본질과 품위를 지키면서도 일상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조화를 담아내는 데 중점을 뒀어요.”

연구소가 생긴 다음 해부터 기획이 시작돼 전통차와 병과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낼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고, 본격적인 메뉴 개발에만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요리사들의 ‘떡 선생님’으로 유명한 연희동 ‘미적감각’의 서명환 셰프가 병과 메뉴 개발에, 고려단차의 맥을 잇고 있는 매월당 18대 김동현 티 디렉터가 18세기 실학자 이운해가 집필한 차 기록서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에 기초해 차 메뉴 개발을 함께했다. 차와 병과의 궁합 외에 서 셰프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바로 ‘계절감’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요리사들의 ‘떡 선생님’ 서명환 셰프

18세기 자료 참조한 차와 병과 개발

“제철 재료로 또렷한 계절감 담았죠”

“우리나라의 또렷한 계절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봄에는 쑥과 진달래가 나고 가을에는 풍부한 과실들이 나오잖아요. 겨울에는 말린 과일이 있고요. 각 시기에 나오는 재료들을 활용해 한식 디저트로 24절기를 풀어내면 재밌겠다 싶었죠. 앞으로 매월 다양한 계절 메뉴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기간 한정으로 선보이는 첫 번째 계절 메뉴는 단오 다과상이다. 옛 궁중에서 더위를 피하고자 즐겼던 제호탕을 재해석한 시원한 ‘제호차’에 대추, 밤, 살구정과를 고명으로 올린 ‘도행병’과 제철 수리취를 넣은 ‘차륜병’, 상큼한 ‘앵두편’을 곁들였다. 선조들의 지혜를 빌려 건강한 여름을 시작하는 다과상으로 6월 중순까지 만나볼 수 있다.

무궁무진, 전통 한식 디저트의 세계

한식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주목받으며 최근 약과, 양갱, 주악 등 다양한 K디저트가 ‘핫템’으로 떠올랐지만, 한식 디저트의 세계에는 아직 낯선 이름들이 많다. 곡물과 과일, 뿌리채소 등에 꿀, 엿, 조청 따위를 섞어 만드는 ‘한과’, 곡물, 견과, 콩 등을 고운 가루로 빻아 다식판에 눌러 만드는 ‘다식’, 과일즙에 한천이나 젤라틴류를 넣고 굳힌 ‘과편’, 식혜, 수정과 등 식사 후 또는 다과와 함께 마시는 차와 음청류까지,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뻗어나가는 가짓수만 해도 300가지 이상이니 당연한 일이다.

제호차에 도행병·차륜병·앵두편

‘단오 다과상’ 6월 중순까지 선봬

선조들의 지혜로 시원한 여름맞이

디저트 살롱의 ‘대표 다과 세트’는 아직 우리에게 낯선, 하지만 깊은 매력을 가진 차와 병과를 경험할 수 있는 메뉴다. 붉은 수색의 홍화차와 <부풍향차보>를 바탕으로 만든 블렌딩 본차 4종(귤향, 매향, 국향, 계향) 중 하나를 선택하고, 여기에 잣경단, 쑥갠떡, 건시단자, 매작과, 오미자 배정과 5가지 병과가 함께 나온다.

다과상에 올려진 작은 것들 하나하나 정성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다. 해풍을 맞고 자란 제주도 쑥을 듬뿍 넣고 쪄낸 쑥갠떡과, 다진 밤소를 깨끗하게 잘 말린 상주곶감으로 말아낸 건시단자, 매작과는 얇게 민 반죽을 비틀어 튀긴 후 계피와 생강향을 더해 고소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잣경단은 으깬 밤과 꿀을 넣은 소에 잣 고물을 고루 입혀 만드는데, 잣을 손질하고 갈아서 기름을 빼야 고실고실한 고물이 나온다. 고물을 만드는 데만 3일이 걸린단다. 오미자를 우려낸 물에 얇게 저민 배를 넣고 조려 만든 새콤한 오미자 배정과까지, 구수하고 달콤하고 새콤한 맛과 식감이 입안에서 잔치를 벌이지만 결코 과한 법이 없다. 차와 함께 천천히 음미하다 보니 귀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서명환 셰프는 한식 디저트의 매력을 ‘은은한 단맛’이라 말한다. “한식은 ‘혀끝에 차곡차곡 쌓이는 맛’이에요. 우리 병과는 너무 달지 않고 담백하면서 은은하게 기분 좋은 단맛이 나요. 숙성과 발효를 거쳐 오랜 기다림과 정성으로 완성되는 귀한 음식이죠. 많은 분이 이 귀함을 맛보셨으면 좋겠어요.”

본질을 지키는 일, 미래세대 위한 사명

이외에도 디저트 살롱에서는 일품차와 오늘의 병과로 구성된 ‘일품 차 세트’, 가장 맛있는 제철 별미를 선보이는 ‘계절 다과 세트’ 등 24가지 차와 병과를 만나볼 수 있다.

커피를 찾는 고객들을 위해 원두에 흙보리를 넣어 로스팅한 맥가배차, 매작과 반죽에 버터를 넣어 만든 흑당과자, 숙성 간장과 조청으로 맛을 낸 간장조청 아이스크림 등 재미난 변주를 준 메뉴들도 즐겨볼 만하다. 모두 전통 한과 제작 기법을 기반으로 K디저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메뉴들이다.

한식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현장에서 K디저트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두 사람이기에 그 뿌리와 본질을 지키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더욱 많은 사람이 우리의 전통 한식 디저트를 만나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한식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게 최종 목표다.

“한식 디저트가 퓨전화된 부분이 많아요. 기본 근간인 전통 떡과 한과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질을 지키는 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식문화 유산을 이어갈 미래세대를 위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많은 분이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한희정 팀장)

여름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6월,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누구나 즐기기 좋은 차와 병과 추천을 부탁했다.

“진강차와 잣경단을 추천합니다. 진강차의 쑥향과 알싸한 생강향, 잣의 고급스러운 풍미를 천천히 음미하고 있노라면 ‘아, 내가 잘 살았구나’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서명환 셰프)

“날씨가 더워지니 홍화차나 매향을 시원하게 드셔보세요. 아름다운 수색도 보실 수 있고 발효차의 여러 향이 가미돼 굉장히 세련된 블렌딩 차를 마시듯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어요.”(한희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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