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방향 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속내

2025-11-02

일본의 새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는 대표적 우파 정치인으로 꼽힌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부정해왔다. 메이지유신 이후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진군하던 일본의 위세, 패망 후 한때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번영했던 시절의 자부심이 지금도 일본 강경 우파의 의식을 지배한다.

기어오른다던 태도 접고 몸 낮춰

정체된 일본의 오늘, 협력은 필연

한국도 강한 나라 돼야 존중 받아

다카이치는 ‘여자 아베’로 불린다. 그는 “꿈에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본다”며 자신을 후계자로 자임한다. 아베가 자학 사관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되찾자는 ‘아름다운 나라’를 내세웠다면, 다카이치는 ‘강한 일본’을 기치로 내걸었다. 활력 잃은 경제를 되살리고, 평화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실질적 군대로 바꾸려 한다. 반격 능력을 명문화한 안보 3문서를 더욱 강화하고, 핵추진 잠수함 보유 논의도 피하지 않는다.

그의 강경 우파 본능은 1994년 국회 질의에서 드러났다. 초선 의원이던 그는 “반세기 전의 국가적 정책 결정을 총리 개인 판단으로 부정할 수 있느냐”며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사죄 외교’를 집요하게 몰아붙였다. 30분 넘게 이어진 그의 질의에서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 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카이치는 2022년 “야스쿠니 참배를 하다 말다 하니 상대국이 기어오른다”고 말했다. ‘기어오른다’는 표현에는 과거 주변국 위에 군림하던 우월의식이 배어 있다. 이런 태도는 일본의 과거사 교육 부재에서 비롯됐다. 패망 이후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감추고 왜곡했다. 그 결과 지금 세대는 일본이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1926~89년 쇼와(昭和) 일왕 시대의 영광만 기억한다. 1954년생 아베와 61년생 다카이치는 그 절정기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다.

그러나 다카이치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본의 내년 경제 규모는 인도에 밀려나 세계 5위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한국에 추월당했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34%에 달한다.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주도권도 한국과 대만에 넘어갔다. 제국의 향수만 남았을 뿐, 힘은 예전 같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다카이치의 ‘한국 러브콜’은 현실의 압박 속에서 나온 선택이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 김을 먹고, 한국 화장품을 쓰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말했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강경 우파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고백이었다. 중국의 군사 팽창, 북핵 위협, 미국 관세 폭탄 등 불확실성 속에서 일본은 한국을 외면할 수 없다. 주가가 급등했지만,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으로 경제 운용은 쉽지 않다.

다카이치는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일·미 황금시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중·러의 결속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중요한 이웃이자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함께 대응할 파트너”라고 했다. 한·미·일 협력이 흔들리면 일본의 안보 전략도 동력을 잃는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총리 취임 직전 그는 야스쿠니 가을 참배를 자제하고 공물 납부로 대신했다. 이런 변화는 강경 우파의 본능이 누그러진 결과가 아니라 뛰어난 현실 적응력의 표현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평했다. 변화무쌍한 삶의 궤적 때문이다. 부모의 반대에도 대학에 진학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드럼을 치며 오토바이를 몰던 그는 방송 캐스터로도 활약했다. 마쓰시타 정경숙을 거쳐 미국 의회 인턴도 했다. 세습정치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 총리 도전 세 번 만에 유리천장을 깼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유연함이 그의 속내까지 바꾸었을까. 한국이 경제와 안보에서 흔들리면 다카이치의 시선은 다시 ‘기어오른다’로 돌아갈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일 협력은 대등한 힘의 균형 위에서만 가능했다. 그것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다카이치가 ‘강한 일본’을 내세우듯, 한국도 ‘강한 한국’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저성장의 수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성장률을 다시 3%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만큼 군사력과 외교력의 확장도 어려워진다. 한국의 국력이 탄탄해야 일본의 강경 우파도 한국을 가볍게 보지 못한다. 국력이 예전 같지 않은 일본에 한국이 필요하듯, 한국도 강해져야 진정한 협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강한 일본’을 내세운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74%에 달한다. 이제 ‘강한 한국’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한국 정치에도 절실하다. 그것이 진정한 한·일 협력의 출발점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