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국가 수호” 극우로 향하는 개신교···‘정교분리’ 원칙은 이렇게 무너졌다

2025-11-02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들이 건국의 주축이 됐던 미국은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나 한국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보면 이같은 원칙이 흔들린다. 그 전면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그는 반복·공개적으로 종교, 즉 기독교 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개신교에서도 정교분리 원칙은 깨진 지 오래다. 부정선거론을 펴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의 중심에 전광훈 목사 등 보수 개신교계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트럼프를 지지하나

트럼프는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그들은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 걸까.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기자 팀 앨버타가 4년간 취재해 지난해 내놓았던 <나라 권력 영광>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트럼프를 지지한 그들의 변명은 이렇다. “트럼프는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위한 불완전한 도구”다. 뒷받침할 논리는 성경에서 찾는다. 다윗이나 솔로몬처럼 결함 있는 지도자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페르시아왕 고레스(키루스)까지 하나님이 사용한 인물이라고 설파한다. 이 논리는 먹혔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욕망과 의도는 무엇인가.

■복음주의자는 누구인가

복음주의(evangelism)는 미국 개신교의 주류이다. 성경의 권위와 예수의 십자가를 핵심적 가치로 강조하는 것이 신앙적 특성이다. 복음주의자(evangelist)는 특정한 세력이라기 보다는 이같은 신앙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이다. 절제의 삶을 실천하고 온건한 사회적 활동에 힘써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뚜렷한 정치적 성향과 지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문에 현재 복음주의자라고 지칭하면 주류 개신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낙태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공화당을 지지하는 백인 기독교인이라는 보편적 의미를 갖고 있다. .

이들이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흑인 민권운동, 성혁명, 반전, 낙태허용 등 미국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되자 기독교 미국을 수호한다는 명분하에서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공화당 대선후보 레이건을 지지하며 정치적으로 결집했고 이같은 흐름은 네오콘과 함께 부시 정권의 지지세력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오바마 정부가 탄생하면서 외적으론 위세가 한풀 꺾이는 듯 했으나 내적으론 공포와 위기감이 극대화됐다. 트럼프 부상 이후 복음주의는 ‘기독교 국가’를 표방하는 극우적 성향까지 포함하며 극단의 주류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엇을 추구하나

팀 앨버타에 따르면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2015년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인식은 ‘미국이 나락에 빠졌’고 ‘기독교가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을 포위하고 있는 악의 세력을 기독교인들이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악의 세력에는 공산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무슬림 등이 포함된다. 이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신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데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있고, 피해의식은 백인우월주의, 선민의식과 연결된다.

정치사회학자 정태식은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종말론에서 말하는 재난은 이들에게 인종전쟁으로 치환된다”면서 “생물학적 멸종에 대한 백인들의 두려움이 타인종이나 여성에 대한 혐오, 차별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에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기독교에 유리할 뿐 아니라 강력한 미국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용했다. 이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기치로 내세운 트럼프의 방향성과 일치한다.

■복음주의자와 트럼프

복음주의자와 트럼프 사이의 큰 간극을 연결했던 이들은 찰리 커크와 같은 극우 운동가, 그리고 유명 목회자들이다. 미국 교회사를 연구해 온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배덕만 원장은 논문 <트럼프, 근본주의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양측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트럼프주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 목회자 4명을 소개한다. 이들은 한국 교회와도 연관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폴라 화이트다. 2002년부터 트럼프 집안과 연결된 최측근이자 영적 멘토다. 오순절파 계열의 교파로, 한국에선 순복음교회가 여기 속한다. 그는 복음주의 내에서 트럼프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과 트럼프의 만남을 꾸준히 주선했다. 제리 폴웰 2세는 복음주의 사립대학인 리버티대 총장을 지냈다. 미국 기독교 우파를 이끌었던 ‘도덕적 다수’ 설립자이자 리버티대를 설립한 제리 폴웰의 장남이다. 제리 폴웰은 공화당 대선 후보 레이건을 지지했고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 비준운동을 저지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극단적 복음주의(근본주의)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지난 7월 방한했던 모스탄은 이 대학 교수다.

윌리엄 프랭클린 그레이엄 3세는 저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의 장남이다. 극동방송 김장환 이사장과 빌리 그레이엄의 오랜 친분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올 3월 백악관에서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트럼프를 위해 기도했던 로버트 제프리스는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대형교회 제일침례교회 목사이자 방송진행자로, 민주당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미국 개신교와 한국 개신교

극우집회에서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나부끼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 개신교와 미국 개신교의 관계를 이해하면 납득이 된다. 19세기 후반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된 개신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통과하면서 반공주의, 친미주의와 결합해 성장했다.

배덕만 원장은 <전광훈 현상의 기원>을 통해 개신교에 극우적 성향이 결합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해방 전 한국 교회의 70% 이상이 거주했던 평안도, 황해도 일대 교인들은 공산주의와 갈등을 겪으면서 대거 월남했다. 이들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들이 되었고 남한 개신교의 반공주의 정체성을 형성했다. 또 분단과 냉전 상황 하에 반공의 선봉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친미세력으로 부상했다. 배 원장은 “경제원조와 개발시대를 통과하면서 한국교회는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미국교회를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한국 개신교는 미군정 출범과 함께 정권과의 밀월 관계가 시작됐고 준국교적 지위와 특권을 향유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자본·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며 점차 신뢰도가 추락하다 최근 1년 사이 사회 갈등의 축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이에 더해 미국 개신교계와 부정선거 음모론이라는 매개를 공유하며 ‘역(逆)시너지’를 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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