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100% 예약은 성공률 0%입니다

2025-09-04

어느 일요일, 평생 주말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겠다는 각서라도 쓴 사람처럼 바삐 움직이시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약속 취소로 일요일 오후가 여유로워지자 난데없이 이발하러 가겠다며 겉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려고? 예약은? 전화는 해보고 가야지? 라는 나의 질문 세례에도 “저(어디든) 가면 된다.”라는 대답과 함께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미용실로 떠나셨다.

주말, 예약도 하지 않고 미용실에 가다니. 분명 허탕을 치고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건만, 한참 뒤 아버지는 말끔히 자른 머리와 함께 귀가하셨다.

“그냥 잘라 주더나?” 놀란 나의 우문(愚問)에 아버지는 “머리 깎으러 갔는데 잘라 주지!”라는 현답(賢答)으로 받아넘겼다.

과거 예약은 특별한 날 행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생일을 맞아 고급 음식점에 간다거나, 문전성시인 곳에 일행 모두가 심기일전해 미리 신청하거나 하는 ‘옵션’ 같은 식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예약은 소소한 생활 속 필수 코스가 돼버렸다. 매주 만나는 동네 친구들의 모임에도 “예약했어?”가 기본이 되었다. ‘예약’은 더 이상 편리함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비생활의 최소 조건이 되었다.

물론, 영업장 입장에서 예약시스템 도입은 당연한 처사이다. 한정된 직원에 손님이 몰리면 서비스 품질은 떨어진다. 반대로 한산한 시간은 매출 공백으로 이어진다. 예약은 이것들을 분배하고 조율하는 효율적인 장치이다.

예약제의 도입 증가에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적지 않다. 2021년 9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미용실·이발소,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에 예약제 운용을 권고했다. 실제 한국화장품미용학회가 작성한 에 따르면, 미용실 예약시스템은 코로나 발생 이후 50% 이상 증가했으며, 번화한 상권, 거주지, 대학가 주변 등의 예약 비율은 60%가 넘었다고 한다.

더불어 예약 비율 증가는 비단 미용업계만의 일은 아니다. 마트, 배달 음식, 택배, 병원까지 우리의 생활에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예약 문화가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디지털 예약제로 변경된 세상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은 접근하기 쉬운 장소의 방문이 제한되고, 점점 사회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100% 예약제가 세상을 방문하는 것에 확률을 덧붙인 셈이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디지털 취약계층 문제? 벌써 몇 년짼데, 왜 이제 와서?’ 아마 철 지난 이슈라 치부할 수 있다. 2024년 코로나19를 인플루엔자(독감) 수준으로 관리하게 되었고, 세상은 정상 가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예약제를 준수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것을 ‘편해’하거나 ‘편애’한다. 예약제에 대한 개인의 불편을 외면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100% 예약제 사회에서 얻는 ‘우연의 성공’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문득 떠오른 장소의 방문, 우연히 길 가다 마주친 장소에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 갑자기 방문한 영화관에서 인생 영화를 만난 즐거움 등,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당연함 속에 ‘삶의 여유’를 뜻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플 속 예약 창에 삶을 끼워 맞추고 그 결과 즉흥성과 자유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약 성공률 100%라는 말은, 곧 우연한 삶의 성공률 0%를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관리할지, 아니면 시간에 의해 관리당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예약으로 가득 찬 우리의 주말, 반가운 이와의 즉흥 만남, 기타 예상치 못한 즐거움 속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성공’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약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장은 노쇼(No-show)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효율적 운영에 대한 매출 관리를, 방문객은 쾌적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언제나 예외와 변수가 가득한 삶 속에서 우리가 예약을 어떻게 관리해 현명하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다. 빼곡히 채워진 현대 사회인들의 달력 속 공간이 우연히 만난 즐거움으로 100%로 채워지길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는 곳마다 100% 예약 성공이 있길 기원한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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