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책무구조도…시행전부터 '무용론' 대두

2025-05-08

오는 7월 대형 금융투자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책무구조도 확대 도입을 앞두고 시행 전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오너가는 모호한 직함을 갖고 사실상 경영 전반에 참여하는데도 불구하고 책무 구조도에 기재된 정식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 최종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책무구조도의 사각지대로 인해 ‘내부통제 강화를 통한 소비자 보호’라는 취지가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책무구조도는 주요 업무의 최종 책임자를 사전에 특정해 내부통제를 강화함으로써 금융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데 방점을 둔다. 다만 책무구조도에 기재되지 않는 직위를 가진 그룹 오너가 사실상 경영 전반에 참여하면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증권이 공시한 지난해 12월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글로벌 비즈니스 자문을 담당하는 ‘글로벌 전략가(GSO)’ 역할을 맡고 있다. 비상근 미등기 임원이면서 비즈니스 '자문’ 역할로 한정돼 있다 보니 책무구조도 기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박 회장은 그룹 오너로서 상장지수펀드(ETF) 전략이나 영업 전략, 주요 투자 결정 등 사실상 경영 전반에 참여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박 회장이 지난 2월 테슬라와 양자컴퓨터 관련 주식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밝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슬라에 대한 신규 담보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박 회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 판매가 달라질 수 있다고 비춰질 수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법인 임원은 “그룹 오너라면 비상근 미등기 임원이라도 사실상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서류상으로 어떤 업무에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책무구조도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준 키움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도 키움증권에서 별다른 직책 없이 비상근 사내이사만 맡고 있어 책무 구조도 기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사회 맴버로서 회사의 주요 안건을 보고 받고 회사의 내부통제 기본 방침과 각종 안건을 의결하는 ‘권한’은 갖고 있지만, 별다른 직책이 없다 보니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질 의무는 없다. 다우키움그룹은 ‘이머니→다우데이타→다우기술→키움증권’으로 지배구조가 이뤄져있는데 김 대표가 이머니의 최대주주(33.1%)다. 사실상 경영자인데도 모호한 직함으로 책무구조도 기재 대상 임원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키움증권은 김 대표가 키움PE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를 겸직하고 있어 현행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겸직 금지 규정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책무 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이나 대표이사가 아닌 이상 규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회사 내에 직책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책무 구조도상 책임을 묻기 힘든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에 참여한 회사에 대한 1차 컨설팅을 최근 마무리 했다. 증권사 19곳과 자산운용사 8곳 등 대형 금융투자회사(자산총액 5조 원 이상·운용재산 20조 원 이상) 27곳이 시범 운영에 참여한다. 금감원의 컨설팅을 받은 회사들은 관련 내용을 보완해 오는 7월 2일까지 금융당국에 책무 구조도를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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