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 3곳을 가다
누군가 미식을 두고 ‘끊임없는 자극에 대한 공부이자 탐험’이라 말했다. 그 말에 계절의 흐름과 절기를 덧붙이고 싶다. 맛을 좇는 이들에게 계절은 때때로 설레는 신호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봄은, 그 설렘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다.
최근 일본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렌드 중 하나는 바로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 단순한 식사를 넘어 하나의 여행지로 기능하는 레스토랑이다. 그 지역의 자연과 문화, 사람과 음식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으로, 오직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창적인 미식을 선사한다. 차별화된 콘텐츠와 요리, 그리고 섬세한 서비스가 더해져야 가능한 이 경험은, 미쉐린3스타가 지향하는 ‘요리를 위해 여행을 떠날 만큼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봄 나는 3박 4일의 여정에 나섰다. 도쿄의 포화 상태인 고급 다이닝을 벗어나, 일본 각 지역의 개성과 계절감을 살린 데스티네이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일본의 푸드 마니아 친구들과 함께 떠난 이번 여행은, 봄철에 가장 정점의 맛을 지닌 산채 요리를 만끽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찾은 세 곳의 레스토랑은 모두 ‘지역성과 계절감’을 독자적으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중 두 곳은 숙소를 함께 운영하는데, 이는 유럽의 와이너리나 시골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오베르쥬(Auberge)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목가적인 자연 속에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꾸며진 공간은 그 자체로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봄날의 미식 여행은 단순한 식도락 이상의 경험이었다. 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식재료, 그 안에 깃든 시간과 땅의 기운, 자연을 담아내는 셰프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타국에서 마주한 산채의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나물 문화와는 또 다른 미각의 우주였다. 그리고 미식이란 결국 자연의 흐름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감각을 그에 맞춰 조율하는 일. 이제는 ‘맛있게 먹는 법’을 넘어 ‘계절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인상 깊었던 세 곳의 다이닝을 소개한다.
50년 넘은 폐교를 개조한 숙박형 … 사케 양조장 체험도 가능
‘오베르쥬 오푸’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이시카와현 고마츠시에 위치한 ‘오베르쥬 오푸’. 50년 넘은 폐교를 개조한 이 공간은 교실, 도서실, 음악실 등이 예술적 감각으로 재해석되어 새 생명을 얻었다. 레스토랑 이름 ‘오푸(Eaufeu)’는 프랑스어로 ‘물(Eau)’과 ‘불(Feu)’을 의미하는데, 이는 고마츠의 맑은 물과 정열적인 불로 요리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곳의 셰프는 33세의 이토이 쇼타(사진). 26세의 나이에 일본 RED U-35 요리 경연대회에서 최연소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교토에서 자라고 츠지요리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프랑스 알자스의 미쉐린3스타 ‘오베르쥬 드릴’에서 연수를 받고,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22년부터 오푸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으며, 깊은 프렌치 소스를 바탕으로 미국식 타코, 일본 전통 생선 요리까지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절제된 격식 속에 젊고 창의적인 감각이 빛나는 공간이다.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노구치 나오히코 양조장’과의 연계로 사케 체험까지 가능한 점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고립된 자연 속 숙박형 레스토랑
‘레보’

도야마현 깊은 산속,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고립된 자연 속에 자리한 ‘레보(L’evo)’는 타니구치 에이지(사진) 셰프가 직접 대출까지 감수하며 완성한 오베르쥬다. 미쉐린2스타와 그린스타를 동시에 획득하며 지속가능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프랑스 ‘베르나르 루아조’와 일본 고베의 일식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후, 자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요리하는 삶을 택했다.

마침 쉬는 날이었음에도 특별히 예약을 받아준 덕분에, 셰프와 함께 단골 수산시장 견학을 하고, 키친 팀과 함께 산에 올라 땅두릅, 생고사리, 교자닌니쿠, 이타도리 등 제철 산채를 직접 채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두꺼비 다리 요리, 갓 채집한 산채와 해산물, 그리고 사냥한 멧돼지·곰고기로 구성된 코스 요리가 이어졌다. 특히 시그니처 메뉴인 머위꽃대와 양젖 치즈를 넣은 생면 소바는 깊은 국물의 온기로 마음까지 데워주었다. 이튿날 아침엔 셰프의 할머니 방식대로 만든 산채 장아찌와 갓 지은 밥, 곰미소스프가 차려졌다. 진정한 오베르쥬의 정수를 맛본 시간이었다.
하루 단 한 팀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
‘빌라 아이다’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평야 지대에 위치한 ‘빌라 아이다’는 하루 단 한 팀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셰프 코바야시 간지(사진)와 소믈리에 아내는 이 주변의 밭에서 300종이 넘는 채소를 직접 재배하며, 그날그날 채소의 상태에 따라 조리법과 페어링을 달리한다. 이곳의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 식생활과 자연 순환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채소는 남김없이 활용된다. 남은 재료는 말리거나 절여 보관하고, 가을엔 쌀과 올리브를 수확해 소금에 절인다. 제철 채소인 소라마메, 눈물콩, 두릅, 고사리 등은 이탈리안 방식으로 최소한의 가열을 거쳐 본연의 맛을 살려 제공된다. 고기도 마찬가지로 버려지는 부위 없이 온전히 사용한다. 모든 것이 조용한 마을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공존하는 미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글·사진=김혜준 푸드 콘텐트 에디터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