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안된다는 생존자들의 말씀에 공감했다. 단순히 피해자라고 부를 게 아니라 지옥에서 생존해 우리 사회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증언한 분들이다.”
조성현PD가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8부작)를 연출한 이유다. 작품은 2023년 사이비종교 취재기를 담아 사회적 파장을 부른 ‘나는 신이다’의 두 번째 이야기다. 앞선 시즌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한 메이플을 비롯해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사건의 생존자들이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았다.
‘나는 신이다’가 피해자의 고백과 내부 고발로 시청자를 압도했다면, ‘나는 생존자다’는 고통 이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치유와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피해자의 증언뿐 아니라 가해 집단을 떠난 이들의 반성과 성찰을 비중 있게 다룬다. 특히 ‘나는 신이다’ 촬영 당시 JMS 신도임을 숨기고 방송국 아르바이트로 제작진에 잠입했던 스파이들이 이번에는 얼굴을 공개하고 증언에 나섰다. 조 PD는 “스파이가 한두 명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제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방송에 따르면 정명석의 성폭력 행위를 숨기고 감추는 업무를 했다는 전 신도는 ‘자신이 하나님이라 믿었던 정명석이 그럴리 없다’고 생각해 불법적으로 피해자들을 감시하고 협박했다. 그러다가 본인이 직접 피해를 당한 후, 마음을 바꿔 탈퇴하고 “피해 신도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메이플은 “내가 정명석을 고소한 이후 21명이 추가로 더 고소했다”며 얼굴을 공개하고 나선 데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정명석은 지난 1월 대법에서 준강간·준유사강간·강제추행·준강제추행 등 혐의로 징역 17년을 확정받았다.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 PD는 전작 공개 후 수차례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과 살해 협박, 가족에 대한 위협까지 겪었고, 경찰에 아내의 신변보호를 요청해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그는 “제 일 때문에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제작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들과의 약속이었다. 조 PD는 “저를 믿고 카메라 앞에서 증언해 준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 PD는 12년 전 자신이 취재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이야기도 새롭게 조명했다. 전두환 정권 아래 부모가 있는 멀쩡한 아이들이 납치 당한 사건이다. 당시엔 고발 형태로 취재했다면 이번엔 생존자 목소리에 집중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연쇄살인 조직 지존파,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후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건의 재현보다 생존자 증언과 사건 기록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구조적 문제와 그 해결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방향으로 연출했다. 조PD는 이 네 가지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반복되지 않아야 할 참사, 그리고 생존자가 남아 있는 사건”이라며 “돈의 가치가 인간보다 높은 곳에서 참사가 벌어진다. 돈과 권력이 생명을 이길 때 우리는 또 누군가를 잃는다. 우리가 무엇을 구조적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