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한지은은 걸어 나간다.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시간이 켜켜이 쌓여 조금은 다른 결과물을 안겨줄 거로, 세상을 믿기 때문이다.
“저는 늘 반 계단씩 성장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한 계단 아니고 반 계단씩, 그것도 한 땀 한 땀 올라왔거든요. 처음에 연기해보겠단 열정 하나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땅에 헤딩하듯 발품 팔아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어요. 이미지 단역으로 시작해, 단역, 작은 조역, 반 단계씩 밟아오다가도 중간엔 ‘내게 배우의 길이 맞을까?’ 3~4년 방황하기도 했죠. 그땐 다른 일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연기가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왔고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선 다시 맨땅에 헤딩하게 됐고요. 오랜 시간 걸려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전 스스로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만의 주관과 가치관을 잃지 않고 많은 이에게 좋은 걸 많이 배우면서 멋있는 색깔을 지닌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한지은은 최근 스포츠경향과 만나 신작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감독 백승환)으로 종교와 믿음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설렘,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동기인 전소민과 처음으로 함께한 소감, 그리고 배우로서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10년 이상 버틴 내 동기 전소민과 함께, 든든했어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은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 ‘도운’(신승호)이 실종된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고해성사를 듣고, 복수와 신앙심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한지은은 도운의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주영 역을 맡아 감정과 액션을 모두 잡는 연기를 펼친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종교적 이야기로 보이지만, 제가 대본을 읽었을 땐 우리 삶에 놓인 선택의 순간에서 선과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지점들을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었어요. 삶의 본질을 묻는 지점이 좋아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죠.”

극 중 신승호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지만, 컷 소리가 나면 신승호가 장난꾸러기로 돌아가 편안하게 주위를 만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워낙 성숙한 이미지라 신승호가 저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서 깜짝 놀랐어요. 저보다 8살 어리더라고요. 그럼에도 속은 굉장히 세심해서 서로 현장에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죠.”
의미 있었던 건 대학 동기인 전소민과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어요. 과거 소민이가 SBS ‘런닝맨’ 고정 크루일 때 저도 홍보차 나가면서 그때 이후로 가끔 연락하곤 했는데, 마침 한 작품 안에서 다시 만나니 든든하더라고요. 배우 생활하면서 10년 넘게 버틴다는 건 쉽지 않잖아요? 동기로서 소민이가 활발히 연기하고 지금까지 같은 업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게다가 이번엔 소민이가 파격 변신을 했는데, ‘역시 내 동기다’라고 뿌듯해했고요.”

■“최근 연극 2편 상연, 절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어요”
지난 2006년 데뷔한 이후 20여 년을 꾸준히 활동해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 끝에 그는 2019년 JTBC ‘멜로가 체질’서 황한주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고, ‘꼰대인턴’ ‘도시남녀의 사랑법’ ‘배드 앤 크레이지’ ‘별들에게 물어봐’까지 다양한 주연작들을 내놓게 됐다. 모두 다 소중한 작품들이지만 앞서 ‘별들에게 물어봐’의 경우, 기대작이었지만 시청률이 너무 낮고 산으로 가는 전개로 논란이 되기도.
“물론 작품이 흥행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에요. 요즘 시대의 흐름이 엄청 빠르기도 하고, 올해 트렌드로 작품을 만들어 내후년에 내놓으면 또 트렌드가 달라질 수도 있어서 갈피 잡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 사이에도 취향이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OTT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나중에라도 이해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올해 초 연극 두 편을 무대에 올린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애나엑스’와 ‘화이트래빗 레드래빗’ 두 편을 소화해내며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 두 편이 절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어요. 무대에선 뻔뻔해도 된다는 걸 알려줬죠. 카메라 앞에서만 연기할 땐 아무래도 컷이 자주 있기도 하고,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아서 어떨 땐 가짜로 연기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데요. 연극은 무대에서 제가 계속 호흡하고 채워나가야 해서 그런 갈증을 해갈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됐어요. 또 몇 달을 공연하니까 그 인물을 계속 생각하게 되니 깊이가 달라져요. 캐릭터 분석에 있어서 관점도 많이 달라졌고요. 무대에서 관객들과 바로바로 소통하고 반응을 느끼니, 중독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또 하고 싶어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은 2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