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이 재판에서 저를 제외하면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법원종합청사 311호, 텔레그램 성착취방 ‘목사방’ 총책으로 기소된 김녹완(33)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이현경) 심리로 열리는 김녹완의 재판 혐의는 강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범죄단체 조직 등이다.
김녹완은 텔레그램에서 ‘자경단’을 운영하며 아동·청소년 피해자 49명에 대한 성착취물 1090개를 제작하고, 피해자 36명의 성착취물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인 피해자 10명을 협박해 나체 사진 286개를 촬영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녹완은 스스로 ‘목사’라 칭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사’ ‘예비 전도사’ 직위를 부여해 또 다른 피해자를 포섭하게 하는 등 피라미드식 조직 체계를 구축해 ‘목사방’을 꾸렸다. 확인된 피해자만 261명, 국내 역대 최대 규모의 디지털 성착취 범죄로 기록됐다.
앞서 ‘박사방’ 조주빈의 범행이 언론에 보도된 2020년 5월 그 수법을 배워 범행했다는 김녹완은 지난 2월 구속 기소된 이후 줄곧 ‘범죄단체 조직’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11일 공판에서는 “‘자경단’은 단체가 아니다. 저 이외의 사람들은 다 피해자인 사건”이라며 자신이 혼자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김녹완은 “어린 친구들이 다 저한테 협박당해서, 나체 사진이 박제당하기 싫다는 마음에 제가 시키는 대로 추가 범행을 한 것”이라며 “이게 무슨 폭력배 조직처럼 상하관계가 있거나 돈을 나눠갖는 그런 개념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보고 ‘목사’ ‘전도사’ 호칭에 빠졌다. 체계가 잡혀있는 게 그럴싸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제 목사방 운영방식을 보면 그의 주장과 다르게 범죄단체처럼 운영된 정황이 엿보인다. 김녹완은 ‘자경단 행동강령’을 만들어 전도사 등 조직원들에게 ‘일어나면 그날 포섭 계획을 보고할 것’, ‘활동 사항을 실시간으로 보고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김녹완은 “그냥 체계적인 척하려고 그랬다”고 했지만 전도사 활동으로 함께 기소된 조모씨는 “아침 9시에서 새벽 2~3시까지 하루종일 김녹완과 연락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녹완이 연락 안 될 때 빼고는 학교나 학원에 가서도 수시로 보고해야 했고, 김녹완이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녹완이 내 성착취물을 가지고 있어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텔레그램 채널에서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5~6명 있었는데, 그걸 보고 ‘전도사’보다 높은 직급이 많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일부를 대리하고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조은호 변호사는 “범행 당시 피해자들은 자신을 조종하는 사람 뒤에 거대한 조직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협박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면서 “그런데 알고 보니 ‘단순히 멋있어 보여서 따라하려고 했다’ ‘범죄 단체가 아니었다’고 하는 건 피해를 축소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