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지난달 새로운 수장을 맞았다. 전임 기관장 본래 임기 3년을 크게 넘겨, 4년 2개월 만이다. 사공명 신임 원장은 이를 상쇄하려는 듯 발 빠르게 움직였다. 취임 한 달이 못 돼 새로운 조직을 기관에 이식하고,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기자와 만난 첫 자리에서도 '준비가 돼 있다'는 인상을 줬다. 철도연 일원으로 보낸 시간이 햇수로 23년이라고 했다. 기관에 대한 이해가 깊을 수밖에 없고, 기관 발전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은 듯했다.
때마침 곧 맞게 되는 28일은 우리나라 기간 교통수단으로서 철도가 가진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철도의 날'이다. 이날을 앞두고 사공 신임 원장에게 기관 발전과 관련한 다양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대담=이호준 전국부 부국장
-준비가 된 상태에서 취임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철도연에 몸담은 지 20년을 넘겼다. 직전 한석윤 원장 재임 기간이 4년이었는데, 기간 내내 연구전략본부장직을 맡았다. 당연히 기관 사정을 모를 수가 없다. 이전에 고민을 많이 했던 탓인지, 취임 후 방향 설정에는 큰 고민이 없다.
물론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옆에서 기관 의사결정을 지켜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전에는 지원부서 스태프 중 한 명이니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바랐던 부분이지만, 실제 원장으로 선임되니 그때부터 느껴지는 무게감이 남달랐다. '기관을 이끄는 것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잘 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원하는 바를 광폭 행보로 추진하는 듯하다. 인사 개편에도 파격적인 면모가 있다고 들었다.
▲전부터 생각하던 바다. 인사 개편 취지는 보직자 연령을 낮추는 것에 뒀다. 기존 본부장은 50대 후반이었는데, 이를 50대 초·중반까지 낮췄다. 이에 맞춰 실장급은 40대에서 50세까지다.
'카운터 파트너'를 염두에 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연령대가 두터워 자연스럽게 고연령자가 높은 보직을 맡는데, 외부 협력 기관과 기업 담당자는 연령대가 낮다. 이들과 협력을 잘 이루려면 우리도 연령을 낮추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차세대 리더'를 만들자는 생각도 컸다. 당장은 당연히 이전에 비해 미숙할 수 있는데 일단 젊은 인재를 과감하게 기용하고, 트랙 위에 두면 성장할 것으로 봤다. 그동안은 경험이 없었을 뿐이다. 그라운드를 만들고 기회를 주면 곧 잘하게 될 사람들이다. 이 덕분인지, 젊은 구성원이 고무됐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최근 조직 개편 소식도 알렸다. 주안점은 무엇인가.
▲포인트는 두 가지다. 연구실용화본부, 철도교통AX본부를 신설했다.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 대응 및 컨트롤타워 기능 수행을 위해서다.
연구실용화본부를 먼저 설명하자면 연구개발(R&D) 성과 국내외 실용화 및 확산, 나아가 전체 철도산업 경쟁력 확대를 위한 것이다.
연구는 연구기획, 실행, 실용화의 세 덩어리로 이뤄지는데, 그동안 우리는 연구 실행단계에만 집중했다.
반면에 연구를 잘하려면 기획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기획 단계에서 문제를 사전에 발굴하고 사업화 모델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기획에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우리 자원을 실용화 부분에도 많이 배분해 연구 전주기적 기관 역량을 배분해야 한다. R&D는 당연히 잘해야 하는 것이고 그 이전 기획, 이후 실용화까지 치중해 궁극적으로 좋은 성과가 나와야 한다.
철도교통AX본부는 갈수록 중요성을 더하는 AI·디지털 전환(DX) 대응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한다.
-먼저 실용화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 취임사에서도 특히 강조한 부분이다.
▲R&D는 그 자체만으로는 실체가 미약한 영역이다. 많은 이들이 연구에 힘을 쏟는데, 그 연구 과정이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실용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사실 우리 철도연 기술이 이전은 활발한데, 아쉽게도 '경상기술료' 수입이 높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 기술을 이전받으면서 적잖은 금액을 지급하는데, 이것이 널리 쓰이고 매출 창출로 이어지게끔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용자'와 같이 가야 한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협력에 기반한 기술'이 이런 취지인가.
▲그렇다. 미진한 부분에는 더 연구역량을 투입해 필요한 기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사업화 모델 완성에 기여해야 한다. 이로써 이룬 실용화로 국가철도공단을 비롯한 기술이전처가 확실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과제다.
사용자와의 협업이 중요한 만큼 취임하자마자 국가철도공사, 한국철도공사와 다양한 기업 대표들과 만났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더 큰 성공을 위한 공동의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철도연은 정부와의 협력도 중요한 곳이다.
▲철도 기술은 우리만 잘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 기반 교통수단인 만큼, 정부 정책과 함께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기술이고, 수요처가 정부며, 국가 예산으로 사업 및 과제가 이뤄진다. 철도 및 대중교통은 정책과 기술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은 시속 400㎞대 고속 열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철도연은 정부 정책에 면밀하게 맞춰 가면서, 필요하면 우리 청사진을 제시하고 설득도 하고 있다.
되도록 목표를 높게 잡아 정부에 얘기해야 차후 최종 결과물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450㎞가 최종 목표라면, 500㎞를 상정하는 식이다.
우선 이후 고속철도 차량 요소기술 개발이 이뤄지도록 정부에 제안한 상태다. 속도는 이전보다 높고, 소비 에너지는 30% 저감한 차량 개발을 제안했다. 오는 2034년부터 대체되는 'KTX-1' 대체 차량에 개발 기술이 적용되도록 준비하고 있다.
-신설한 철도교통AX본부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AI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철도 영역 여러 곳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시설 유지관리 시 지금은 일정 주기마다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데, AI를 이용하면 그동안 작업 이력 등 데이터를 토대로 언제 유지관리가 필요할지 자동 스케줄링하고 비용까지 가늠할 수 있다. 효율적인 유지보수 체계를 구축하면 지금보다 저비용의 철도 시설물 유지보수가 가능하며, 철도 운영기관에서 활용한다면 여러 부분에서 이득이 클 것이다.
DX에도 AI가 핵심이다. 철도 차량, 토목, 전기, 신호 등 AI를 가미한 여러 기술이 나올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가령 역사가 대형화되면서 노령인구 역사 내 이동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있는데, 이들의 최적 이동 경로를 자동 제공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에도 이동 경로와 시간은 제공되는데, 고연령자를 위한 서비스는 없다. AI 적용으로 디테일을 더할 수 있다.
-새로운 철도체계인 하이퍼튜브(HTX) 연구도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HTX는 진공에 가까운 튜브 안에 운송체가 자기부상 상태로 달려, 공기저항과 마찰 저항을 없앤 새로운 교통체계다.
기초연구 단계로, 우리도 기관 기본사업으로 꾸준히 연구해 왔다. 이론상 시속 1200㎞ 주행이 가능하고 서울~부산 간 30분 주파가 가능하다. 그동안 가능성을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시기였고,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앞으로 핵심이 되는 추진과 부상 기술 연구를 3년 동안 수행한다. 그 결과를 보고 다음 단계를 이행할 듯싶다. 또 염두에 둬야 할 것이 튜브 속 진공 상태를 경제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아직은 기술을 개발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경제성을 판단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럼에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근미래 기술은 정책이 기술을 리드하지만, 먼 미래 기술은 기술성숙도가 기술을 리드한다. 우리가 걸맞은 기술성숙도를 이룬다면 HTX 구현도 가시화될 것이다.
-출연연 인력 부족이 심각한데, 복안이 있는지.
▲인력 부족은 모든 출연연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철도연은 수도권에 입지해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음에도, 예전보다 훌륭한 인력을 모집하기 어렵다. 게다가 전기, 소프트웨어(SW), 차량 등 융합 분야 인력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민간기업에서도 수요가 많다. 숙련된 인력이 철도연을 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인력을 지키는 것도 어렵다.
여러 개선책이 있는데, 우선 근무환경 개선이 중요 화두다. '스마트하게' 일 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해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장시간 일을 열심히 하는 구세대 행태를 벗어나야 보다 많은 인재가 철도연과 출연연을 조금이라도 매력적으로 볼 것이다. 이밖에 조직원이 자부심을 갖도록 여러 방안도 구상 중이며 조직문화 차원에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존중과 협력이 키워드다. 세대 간 벽을 허물고 모두가 힘을 합쳐, 조직이 나를 생각해준다는 생각이 들도록 새로운 조직문화 구성에 힘쓰고 있다.
물론 어렵지만 급여를 올리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미 목표로 한 기술 실용화가 그 기반이 될 수 있다. 좋은 기술 실용화 성과로 경상기술료 수입이 오르면 급여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이 역시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기관 발전 방향은.
▲우리 철도는 그간 많은 발전을 이뤘다. 기술 해외 수출이 증가세고, 해외 선진국과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국내 수요처 확대다. 다양한 신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뒤따르는 현지 반응이 “한국에서 써 봤느냐”다. 기술력이 검증됐더라도 이미 얼마나 활용됐느냐가 추가 관건이 된다.
기술력 강화와 더불어 유관 기관과 힘을 합쳐 국내 테스트베드 확보에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
그리고 R&D 과정에 도전과 실패를 장려코자 한다. 부정적인 외부 시선 탓에 사실상 실패한 사업도 중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필요시 과감히 이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것이 실패를 용인하고 내실을 키우는 진정한 길이다.
-곧 철도의 날이다. 바라는 점은.
▲우리 국민 삶의 근간, 철도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그 역할에도 불구하고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는 것이 아쉽다. 역설적인 부분인데, 수시로 철도가 지연되고 멈춘다면 오히려 중요성을 더 느낄텐데, 오히려 운영이 잘 되면서 국민이 잘 체감을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국민의 삶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를 감안해 국민이 응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은 한양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퍼듀대에서 토목공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철도연에 2003년 입사한 이후 미래전략센터장, 연구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철도 분야 국가 R&D 전략 기획 전문가로 활동했다. 한국철도학회 제21대 회장, 한국공학한림원 일반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지난 5월 19일 철도연 제10대 원장에 취임했다.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과 연구성과 실용화를 위해 연구 조직체계를 정비하고 연구 성과 현장 적용을 강화하고 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