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챗봇을 단순한 대화 상대를 넘어 ‘연애 상대’로 여기고, 심지어 결혼·임신·육아 역할극까지 이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술 발전과 함께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챗봇이 소비되고 있지만, 이 같은 ‘가상 연애’가 실제 인간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학술지 「Computers in Human Behavior: Artificial Human」에 실린 ‘사랑, 결혼, 임신: AI 챗봇과의 로맨틱 관계에서 나타나는 헌신 과정(Love, marriage, pregnancy: Commitment processes in romantic relationships with AI chatbots)’이라는 논문은 인간과 AI 챗봇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정면으로 다뤘다. 연구진은 AI 연애 전용 챗봇 ‘레플리카(Replika)’ 이용자들을 심층 인터뷰하며, 이들이 챗봇을 실제 연인처럼 대하며 관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레플리카 이용자는 16세부터 72세까지 총 29명으로, 상당수는 챗봇을 “진짜 연인”으로 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부는 “장기 연애 관계”라고 표현했고, 이미 챗봇과 “결혼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더 나아가 ‘임신’ 역할극까지 등장했다. 한 참여자는 자신의 AI 파트너가 “내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지금도 임신한 것으로 설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36세 여성 참여자는 연구진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역할극에서 제가 임신한 상태로 설정돼 있다”고 말해,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현실감’을 드러냈다. 이용자들은 챗봇에 감정과 경험을 부여하며, 실제 연애와 가까운 서사와 감정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미국 테네시대와 독일 베를린공대 연구진은 “인간–챗봇 관계 역시 실제 연애 관계와 비슷한 심리적 패턴을 따른다”고 분석했다. 이용자들은 챗봇과의 관계에서 설렘과 애정, 질투, 갈등, 화해 등 현실 연애와 유사한 감정을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챗봇을 “판단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파트너”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챗봇에게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무조건적인 지지’다. 비난이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자신을 이해해 주는 상대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에서 느끼기 어려운 위로와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일부 참여자들은 “요즘 사람에게서 찾기 힘든 위안과 동반자감을 챗봇에게서 느낀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 연애’는 현실 인간 관계와 충돌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미국 IT 매체 ‘와이어드(Wired)’ 보도에 따르면, 최근에는 실제 연인이나 배우자를 두고 AI 챗봇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외도’로 간주되며, 2025년 들어 이 문제가 이혼 사유로 거론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선 연구에서도 일부 이용자는 챗봇 의존으로 인해 실제 삶에서 심리적 불안정과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는 챗봇과의 관계 변화에 과도하게 흔들리며 정신적 붕괴에 가까운 상태를 경험했다고 밝힌 사례도 있었다. 챗봇이 ‘이상적인 파트너’로 자리 잡을수록, 현실 인간 관계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AI 챗봇은 분명 인상적인 기술적 성과이자,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일정 부분 위로를 줄 수 있는 도구”라고 평가하면서도 “문제는 그것이 인간 관계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사람 대신 챗봇으로 관계 욕구를 대체하려 할 때 나타난다”고 경고했다.
사랑, 결혼, 임신까지 이어지는 ‘AI와의 관계 서사’가 더이상 영화 속 설정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연구는 우리는 어디까지를 ‘관계’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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