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오늘의 사회는 중세의 무지와는 다른 형태의 혼돈을 겪고 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식이 과잉되었기 때문이다. AI는 정보를 통합하지만 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 소셜미디어는 참여를 극대화시켰지만, 동시에 분노와 왜곡을 증폭시킨다. 특히 청소년 세대는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 감정의 폭이 좁아지고, 사유의 과정이 즉각적 반응으로 대체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교육이 아니라, 문법, 논리, 수사학이 가르쳤던 사유의 훈련과,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이 가르쳤던 조화와 질서의 감각이다. 언어의 정확성, 판단의 명료성, 감정의 균형, 우주적 시야, 이 네 가지가 인간 교육의 기초였다면, AI 시대에는 바로 그것이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 된다.

미래 대학의 방향, 기술 너머의 교양
AI 시대의 대학은 다시 훔볼트의 Bildung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많은 대학이기술적 변화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전공을 세분화하고, AI, 데이터사이언스, 핀테크 등의 기술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인간의 성찰 능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언어를 생성하고 코드를 작성할 수 있는 시대에, 대학은 오히려 '사유의 문법'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트리비움은 비판적 사고력과 윤리적 의사소통으로, 쿼드리비움은 데이터 해석력과 조화 감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AI 기술의 이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할 때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가치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판단이다. 훔볼트의 교양대학은 바로 이러한 철학을 구현하는 모델이었다. 자유로운 연구, 학문 간의 통합, 학습자의 자율을 보장하는 제도적 구조는 오늘날의 AI 기반 교육 플랫폼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본질, 즉 생각하고 판단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AI와 인간, 그리고 새로운 학제의 필요성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냉전의 경쟁 속에서 국민교육제도를 표준화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6-3-3-4 학제, 즉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으로 구성되는 학제가 자리 잡았다. 이 구조는 20세기 중반의 현실, 즉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재건을 위한 인재교육, 표준화된 시민교육을 위한 체계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1911~1945) 동안 조선에서는 일본의 「조선교육령」 체제하에 보통학교 6년 + 중학교 5년 + 대학예과·본과 4년의 학제가 시행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미군정의 학제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교육법」(법률 제86호, 1949년 12월 31일 제정·공포) 에서 6-3-3-4 학제를 법적으로 확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산업사회가 아닌 AI와 로봇시대에 접어 들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모사하고, 기계는 판단의 영역에까지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의 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틀 안 갖혀 아이들에게정답을 찾는 법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학제 개편으로 미래 대비를
현행 6-3-3-4 체계는 전후 일본과 미국에서 도입된 근대적 교육모델의 변형이며, 유아교육이 제도화되기 전 산업노동 중심 사회에 맞추어 설계된 제도다. 이제는 인간의 성장 주기, 기술 환경, 그리고 국제 기준에 맞추어 교육의 연령과 내용, 경험의 질서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새로운 기본구조는4(1세부터 유아 의무교육) – 5(초등) – 4(통합 중·고등) – 1(세계 체험, 의무교육) – 4(대학 및 대학원 연계)로 개혁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 개편은 단순히 연도를 바꾸자는 제안이 아니라, 각 단계가 인간 발달의 한 과정으로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유아기는 감각과 언어의 시기, 초등은 사유와 협력의 시기, 중등은 응용과 판단의 시기, 체험 1년은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세계시민성을 학습하는 시기, 대학은 탐구와 지식확장의 시기다. 이 과정은 국제교육인증체계인 유럽대학의 교육의 질과 내용을 규정한 유럽의 ESG(Standards and Guidelines for Quality Assurance in the European Higher Education Area)와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있는 ABET(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and Technology) 와의 정합성을 전제로 한다.
유아 및 초등교육, 생명존중과 감성의 기초
국가 의무 유아교육은 1세부터 5세까지 4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 시기의 교육은 언어와 감각, 애착과 공감, 자연 속 경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스크린보다 자연, 정보보다 이야기, 정답보다 감정의 소통이 중요하다. 스웨덴의 Läroplan för förskolan (2022) 이 강조하듯 "민주주의와 인권 및 타인존중"의 감각은 유아기에 형성된다. 초등과정은 OECD Learning Compass 2030이 제시한 핵심 기초(core foundations), 즉 문해력, 수리력, 디지털 문해, 사회정서 역량을 통합하는 단계다. 각 학년마다 '생명존중 프로젝트'를 운영해 물, 숲, 동물, 사람을 주제로 체험하게 하고, AI와 함께 살아갈 시대의 어린 시민으로서 또래들과 놀이(play)와 이야기(storytelling)를 통해 기계가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느끼고,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지식은 기술이지만, 이해는 인간의 능력이다.
통합 중고등교육, 응용과 윤리의 교육
중등과 고등은 기술과 인문이 만나는 응용 단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수학, 과학, 공학, 인문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문제해결 스튜디오를 운영하여, AI 윤리, 자율주행, 의료데이터, 기후기술 등 실제 사회문제를 다루게 한다. 독일 교육장관회의(KMK)의 "디지털 세계 교육전략"은 탐색, 소통, 제작, 보호, 성찰로 구성되는 다섯가지의 역량을 제시했고, 핀란드는 현상기반학습(Phenomenon Based Learning)으로 교과 경계를 무너뜨렸다. 한국도 "지식의 교육"에서 "문제의 통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단계의 교육목표는 기술적 능숙함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력이다. 자율주행차가 사고 직전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결국 그 알고리즘을 설계한 인간의 윤리교육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AI가 사고를 결정하기 전에, 교육은 생명을 존중하도록 인간을 훈련시켜야 한다.
세계 체험 1년, 청년수당보다 교육투자를
17세기 초, 근대 과학의 선구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 1627)』에서 한 국가의 위대함은 무력이나 금이 아니라 지식의 탐험자들에 의해 세워진다고 보았다. 그는 이들을 전 세계로 보내어 새로운 발견, 학문, 기술, 풍속, 언어, 제도를 배우게 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기록하고 탐구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들의 임무는 식민이 아니라 배움의 순례였으며 문명의 상호 이해에 초점을 두었다. 오늘날 AI 시대의 국가가 길러야 할 인재는 베이컨이 제시한 지식의 항해자처럼 교육시켜야 한다. 기술은 빠르게 국경을 넘지만, 인간의 이해는 여전히 편협하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학제 개편 속에는, 고등과정을 마친 모든 청년이 1년간 세계로 나가 배우는 공적 체험 교육(Global Civic Year) 이 필수로 포함되어야 한다.
『뉴 아틀란티스』의 지식 항해자들이 그랬듯, 한국의 젊은 세대도 이제 지식과 경험의 탐험가로 세계를 누벼야 한다. 그들이 가져올 것은 물질이 아니라 문명 간의 이해와 창의적 통찰이다. AI가 계산할 수 없는 그 경험의 깊이가, 100년 후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삼성의 비약적 성장은 단순한 기술 경쟁력만이 아니라, 전 세계 파견형 글로벌 인재 육성 프로그램(Global Leadership Program) 을 통한 인적 자산의 축적에서 비롯되었다. 연수자들은 각국의 문화와 언어, 사고방식을 몸소 경험하며 세계 시장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이러한 현장 기반의 학습이 기업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다. 실제로 삼성의 인재 양성 모델은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등 주요 경영대학원에서 글로벌 리더십 교육의 모범사례로 다뤄지고 있다. 고교를 마친 18~19세에게 세계 체험 1년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은 유럽에서 유지해 온 미래 지도자교육 프로그램이었던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현대적 복원이다. 18세 시민이 다른 문화, 언어, 종교, 역사 속에서 살아보는 것은 교과서 수십 권보다 깊은 학습이 된다. 고교졸업생 23만명(2025년 기준) 전원을 해외파견 교육에 드는 비용은 1인당 3,500만원 기준 어림 잡아 8조, 그 중 70퍼센트를 선발해 보낼 때 드는 비용은 5조원이 든다. 국가는 전 국민 15조 현금지원 정책보다 '체험 교육비 지원'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대학 및 대학원교육,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종합적 판단의 교육
대학은 산업의 하청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훔볼트가 1810년 베를린대학을 세우며 제시한 교양(Bildung) 은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 확장과 자기형성의 과정이었다.
오늘날 대학은 이 정신을 AI 시대에 맞게 갱신해야 한다. 1학년 공통 교양에는 인간과 생명, 지구와 우주, AI를 포함해 모든 전공의 출발점을 공유하게 하고, 2~3학년 전공 단계에서는 연구와 설계, 사회적 영향 평가를 통합한 캡스톤 스튜디오형 교육을 운영해야 한다. 우리나라 일부대학도 실험적으로 도입한 이 교육제도는 MIT, 스탠퍼드, ETH Zürich, 덴마크 공대(DTU) 등은 이미 "Capstone Studio" 혹은 "Design Thinking Studio"를 모든 전공의 공통 교양으로 확대 중에 있다. 모든 전공은 ESG/ABET 기준을 바탕으로 윤리, 안전, 팀워크, 의사소통, 지속가능성을 포함해야 한다. 의학, 공학, 인공지능 전공 학생들은 실험 시나리오 중 생명 보호 판단과 책임 귀속 토론을 반복 훈련함으로써, 기술이 아닌 윤리가 결정을 내리게 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의 시대를 이끄는 인간교육
깐부치킨집에서 나눈 재계 3인의 대화는 결국 산업의 미래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기술과 공존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AI가 세상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기술의 사용 목적과 윤리적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AI 시대의 교육은 트리비움과 쿼드리비움의 정신, 그리고 훔볼트의 교양교육이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더 많은 정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는 일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 중심 교육이 아니라 인간 중심 교육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트리비움과 쿼드리비움이 그랬듯, 교육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언어와 논리로 진실을 구별하며,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AI 시대를 넘어 100년을 준비하는 교육개혁](https://img.newspim.com/news/2025/10/30/251030211438104_w.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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