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은 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열 개의 ‘태엽’에 의해 작동하는 ‘시계’와 같습니다. 몸의 리듬을 조절하면 감정도 조율할 수 있어요."
‘감정시계’라는 독창적 개념을 제시한 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도형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이다. 그는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시절,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가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미국 통증학회 공식 학술지에 발표해 주목받았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과 관련해 20편 안팎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며, 정신과 의사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통증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인물로 평가된다.
강 원장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감정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듯 패턴을 보인다"며 “몸의 리듬이 감정을 만들어 내는 매커니즘을 이해하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내용을 담아 펴낸 책이 ‘감정시계’(샘앤파커스)다. 강 원장을 직접 만나 몸과 감정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감정은 생존 시스템…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탈이 나요”
강 원장이 몸과 감정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은 학부생 시절이다. 당시 그는 만성통증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통증과 감정이 서로 깊이 얽혀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 연관성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몸이 아픈 환자를 왜 정신과에서 보느냐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을 진찰해보면 대부분 정신과적 증상을 함께 갖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몸과 마음의 연결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데카르트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정의했다면, 20세기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인간을 ‘감정을 느끼는 존재’로 다시 규정했다. 강 원장도 이에 깊이 동의한다. 그는 “지금은 이성과 감정의 균형이 가장 크게 깨진 시대”라며 “사람들이 감정을 충분히 돌보지 않고 산다”고 지적했다. 인지과학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감정의 중요성을 오히려 주변으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면 미성숙해 보인다고 여기고, 특히 부정적 감정은 드러내기보다 억누르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강 원장은 “감정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생존 시스템’”이라며 “긍정·부정을 떠나 감정은 모두 신호이며, 그 신호를 외면하면 결국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오래 살기 힘든 것처럼, 감정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인간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다.

감정을 읽는 도구, 감정시계
그러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무수한 무의식적 감정 중 일부가 의식 위로 떠올라야 ‘내가 슬프구나, 화났구나, 기쁘다’고 인지합니다. 큰 바다 아래 수많은 생명이 있어도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올라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죠.”
요즘은 오히려 외부 자극이 너무 강해 내면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강 원장은 “쇼츠나 설탕 같은 오감 자극 요소가 너무 많다”며 “이 강렬한 자극들 때문에 현대인은 집중력만이 아니라 감정과의 연결도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 깊고 변덕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 바로 ‘감정시계’다. “감정은 뇌의 전기적 작용으로 갑자기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 상태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갖고 생리적 구조 안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죠.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감정은 시계 바늘처럼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움직입니다.” 강 원장은 다양한 신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고, 이미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몸속의 열 개 ‘태엽’
감정시계를 이루는 몸속 ‘태엽’은 무엇일까. 강 원장은 책에서 총 10가지 감각 기관을 설명한다. 장은 소화기관이면서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는 ‘생화학 엔진’ 역할을 한다. 심장은 정서적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외부와 가장 넓게 맞닿은 감각 기관인 피부는 감정 신호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창구다. 차가운 바람, 따뜻한 손길, 습도 변화만으로도 기분은 쉽게 달라진다. 송과체, 편도체, 해마, 뇌간, 섬엽, 생식선 등도 감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준다.
척추가 감정에 핵심적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인상적이다. 강 원장은 “허리를 구부린 상태로 하루를 보내면 감정도 함께 수축한다”며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는 것만으로 교감신경계 긴장이 완화되고 감정의 결도 달라진다. 감정은 몸의 모양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 역할을 할까. “마음이 요리라면 몸은 재료, 뇌는 요리사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도 재료가 나쁘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죠. 생체 기관들이 정돈되지 않으면 사고방식을 바꿔도 불안·분노·우울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강 원장이 루틴을 강조하는 이유도 감정을 만들어내는 ‘태엽’들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햇볕 쐬기, 아랫배 두드리기, 스트레칭, 반신욕 등을 포함한 ‘DH루틴’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명상 역시 유효한 치료법이다. 그는 “명상은 마음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몸의 리듬을 알아차리는 법”이라며 “몸을 이완한 뒤 올바른 호흡으로 해야 제대로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정신과 의사로는 드물게 명상의 효과를 다룬 논문 13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감정을 억누르는 시대, 감정과 함께 사는 법
많은 사람이 감정을 바꾸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읽고 긍정적 사고를 되뇌지만, 감정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진화시킨 가장 정교한 감각 시스템이자 인간다움의 핵심이라고 그는 말한다. 감정을 억제하기보다 관리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설명이다.
“요즘은 ‘소시오패스 전성시대’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감정을 배제한 냉철함과 효율만을 추구하고, 공감 능력이나 불안은 약점으로 여겨지죠. 하지만 감정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거이자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입니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존중하면 삶은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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