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이 기술 빼돌려 단체 이직…中위장업체에 버젓이 취업도

2025-05-25

국내 중소기업인 A사의 임직원 20여 명은 회사가 경영난을 겪는 틈을 타 회사의 첨단기술인 ‘카메라모듈 검사장비 기술자료’를 무단으로 반출한 뒤 중국 경쟁 업체로 단체 이직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기술 자료를 중국 회사에 넘겨준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올해 1월 기술 유출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임직원 6명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직원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기업에 근무하던 B 씨는 국가 핵심 기술 및 회사의 주요 영업 비밀 자료를 몰래 빼돌린 뒤 중국의 경쟁 회사로 이직할 계획을 세웠다. B 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실제 이직할 중국 회사가 아닌 별도로 설립된 위장 회사와 허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등 교묘한 방법을 썼다.

25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 직원들이 해외 법인으로 이직하면서 국가 핵심 첨단기술을 무단 반출하는 사례는 이미 흔한 범죄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별도의 위장 회사와 허위 고용계약을 체결하거나 위장 신분을 이용해 기술을 유출하는 등 범행 수법이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로그인 기록을 삭제하거나 메신저 대화를 폐기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공모해 허위 진술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증거를 인멸하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외국 기업이 국내에 법인을 설립해 기술을 유출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을 직접 인수하면 규제를 우회할 수 있고 해외 생활을 꺼리는 전문가들을 손쉽게 영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경우 국가정보원의 감시망을 벗어나 수사기관의 단속도 더욱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문중개 업체를 이용해 합법적 자문 형식을 가장해 핵심 기술을 빼내는 신종 범죄 수법도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8월 국내 2차전지 제조업체 임원이 외부 자문을 명목으로 고액의 자문료를 받고 제조·공정과 관련된 국가 핵심 기술을 촬영해 외부로 유출한 사건을 적발했다. 검찰은 핵심 가담자 1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범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술을 유출한 뒤 이를 이용해 특허소송을 제기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도 있다. 국내 기업 전직 임원들이 미국에 특허관리전문회사(NPE)를 설립한 뒤 과거 재직 중 빼돌린 기밀 기술을 이용해 미국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6월 이 사건과 관련해 주범 3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범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전략물자인 반도체 IC칩을 중국 등 해외에 불법 수출한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군사용 레이더 장비에 쓰일 수 있는 첨단 IC칩을 수출하면서 정부의 필수적인 수출 허가를 받지 않고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반 견본품인 것처럼 허위로 신고했다.

검찰은 기술 유출 범죄가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화돼 현행 수사 시스템만으로는 증거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피해 기업들 역시 기술 유출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고소·고발에 소극적인 편이다. 기술 유출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무죄율이 높고 피해액 산정 또한 개발 투자금뿐 아니라 미래 예상 수익까지 포함해야 해 매우 까다롭다. 유출된 기술이 중국 등 해외에서 활용될 경우 국내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고 현지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 손해배상액 역시 대부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수준에 그치며 현재까지 100억 원 이상 배상 판결은 없다.

정창원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술 유출 사건은 범행 과정이 여러 단계로 나뉘고 핵심 범죄행위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서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특히 피해 기업이 기술의 가치와 피해 규모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양산 기술처럼 실제 제품 생산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경우 그 피해를 증명하는 것이 더욱 까다롭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략물자 불법수출 수사 전담부서를 대검찰청 사이버·기술범죄수사과로 이전하고 국정원·특허청·관세청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높이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며 국제 협력을 확대해 국가 경제안보 체계를 더욱 견고히 할 계획이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산업안보국(BIS),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유관기관과 함께 ‘기술유출 한미 라운드테이블’을 출범시켰고 이달 8일 열린 제3차 회의에는 일본 경찰청도 참여해 국제적 협력 범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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