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의 부동산은 건강보험료 부담을 지우고 복지 혜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노인은 직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건보 지역가입자가 돼 재산 건보료를 문다. 기초연금·기초생활보장제 등의 혜택을 보는 데도 지장을 받는다.
전직 대기업 임원 H(81·서울 양천구)씨는 아파트·오피스텔·오피스와 충남 땅 1000평(3306㎡) 등을 갖고 있다. 월 30만원의 건보료를 내는데, 재산 건보료가 대부분이다. 임대료·국민연금 등으로 월 270만원 수입이 들어오지만 부족하다. H씨는 "지출을 줄이려 매년 명절·제삿날, 손자 오는 날만 에어컨을 튼다. 생활비 100만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H씨는 수년 전 자녀들에게 아파트를 사줬다. 재산의 3분의 2이다. 자녀의 경제 활동에 도움을 줬다. 그는 "갖고 있어 봤자 뭐하겠나. 나중에 자식들이 싸우게 된다"고 말한다.
H씨 본인도 재산 건보료와 세금을 상당히 줄였다. 그래도 남은 재산이 적지 않아 건보 피부양자가 못 된다. 그는 "세금 낼 거 다 내는데, 기초연금 같은 건 못 받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한다.

정부가 재산 건보료 부담을 줄여왔지만 여전히 높다. 시세 10억원이면 12만원 넘게 나온다. 주택에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일본이 없애면서 한국에만 있는 제도가 됐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재산 건보료 총액은 2조9704억원. 지역가입자 건보료 총액의 31.3%이다. 2020년(41.2%)보다 떨어졌지만, 노인에겐 부담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은퇴자 김모(70)씨는 재산분 11만원, 소득분 10만원의 건보료를 낸다. 분당의 24평형 아파트, 충북 땅 490평에서 재산 건보료가 나온다. 김씨는 "직장에 다닐 때는 건보료가 부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다르다"며 "생활비는 줄이기 쉽지 않고, 재산의 건보료·세금은 그대로라서 걱정된다"고 말한다.
소득이 0원인데 재산 건보료를 내는 노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213만1474세대(세대당 평균 3만4886원)에 달한다. 75세 이상이 64%이고, 90세 이상도 19만7120세대(9.2%)에 달한다.

건보료를 줄이려고 가족·지인 등의 사업체 직원으로 올리기도 한다. '가짜 직장인'으로 적발된 사람이 2020~2024년 8976명이고, 이 중 65세 이상이 3110명이다.
부동산이 많으면 기초연금도 못 받는다. 소득 없는 1인 가구에 공시가격 8억2000만원 이상의 주택이 있으면 탈락한다. 부동산(기본공제 후)의 4%가 연 소득으로 잡힌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있으면 대부분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초연금 대상자가 아니면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동통신·대중교통 요금 지원 등의 혜택을 못 본다. 충남 보은군의 스포츠 시설 이용료(최대 15만원), 강원도 고성군의 보청기 구입비(70%) 등 지자체의 수많은 복지 지원도 못 받는다.
박모(73·서울 양천구)씨는 9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은 자녀 집에 산다. 사별 전에 자녀 둘에게 각각 아파트·상가·원룸을 사줬고, 남은 게 거의 없다. 아들에게 매달 200만원 받는다. 박씨는 "가끔 너무 일찍 재산을 준 게 아닌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자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길 잘한 것 같다"고 말한다. 또 건보 피부양자, 기초연금 수급자가 됐고, 노인 일자리 사업(복지관 카페)에 나간다. 박씨는 "복지관에 나와 웃고 떠들고, 비만 타파 등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말한다.

노인 재산은 기초수급자가 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주거용 주택 가격(기본공제 후)의 1.04%를, 나머지 부동산은 4.17%를 월 소득으로 잡는다. 끝까지 보유하다 숨지면 자녀의 골육상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에 관한 사건'이 2020년 4만4927건에서 2023년 5만7567건으로 매년 증가한다. 지난 3월 94세 노인이 갑자기 숨졌다. 그런데 큰아들 부부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10여 년 전에 작성한 유언장이 나오면서 나머지 사형제가 들고 일어났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건보료 부담이 재산의 조기 증여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재산 건보료가 노인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소득 중심으로 빨리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 실장은 "노인의 현금 수입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산을 주택연금 같은 역모기지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서 생전에 쓰고 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도마다 주택연금을 달리 취급한다. 주택연금으로 돌려도 재산 건보료는 그대로다. 기초연금·기초생보제는 다르다. 주택연금으로 받은 돈(누적 연금액)을 부채로 간주해 재산 산정 때 빼준다. 다만 기초생보제는 주택연금액의 절반을 소득으로 잡는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재산을 물려받는 자녀의 나이가 고령화되고 있어 받은 재산을 활용하기 점점 어려워진다"며 "주택의 절반만 연금화하고 나머지는 자녀에게 상속하는 식으로 상품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