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미술 컬렉션, 공유인가 소유인가

2025-08-03

더 이상 미술관과 갤러리만이 예술을 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 미술은 자본주의의 중심부까지 깊숙이 스며들었다. 기업의 로비, 고객 라운지, 업무 공간과 주변 환경이 예술품으로 꾸며지며 문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959년 데이비드 록펠러가 체이스맨해튼 은행에 ‘아트 앳 워크(Art at Work)’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기업 컬렉션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은행은 2000년 JP모건체이스로 합병된 후에도 예술을 기업 정체성의 일부로 적극 확장해 나갔다.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하지만

돈 되는 ‘블루칩’ 위주 구입도

내부에 수집·활용 전문가 둬서

진정한 예술 공유로 확장해야

UBS·도이치뱅크·유니크레디트·BOA(Bank of America)·마이크로소프트·프로그레시브·LVMH 등 세계 유수의 기업 역시 각기 고유한 컬렉션을 보유하며, 예술을 문화 마케팅, 사회공헌, 브랜딩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많은 기업들이 예술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미술품 수집은 기업의 이미지 향상, 브랜드 가치 강화, 예술 후원, 직원 복지, 창의성 증진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진정한 ‘문화적 기여’인지, 아니면 ‘자산 증식의 수단’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해외 사례에서도 문화적 공헌이라는 외형과 달리, 각 기업 컬렉션이 어떤 철학과 원칙 아래 운영되는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미술품 수집이 아트 테크와 자산관리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기업 컬렉션이 ‘블루칩 100작가(ArtPrice100ⓒindex)’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블루칩 100작가’의 20년간 수익률은 S&P500 대비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023년 기준). 미술시장에서 투자 포트폴리오로 활용되는 주요 자료로, 한국 작가 중에서는 이우환과 김환기가 이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미술품 수집이 문화 자산으로서 공공성을 지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체 투자 및 자산 운용의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유명 작가 위주의 컬렉션에 더해 신진 작가를 병행 수집하며 사회적 기여를 강조하는 방식 역시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화학기업 DIC의 사례는 기업 컬렉션의 공공성과 자산 가치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이 회사는 1990년부터 르누아르, 피카소,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의 명작을 소장한 ‘DIC 가와무라 기념미술관’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2024년 DIC 이사회는 자산 효율성을 높이고,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반영해 소장품 매각 및 미술관 이전, 축소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지역의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충돌했다. 이 사례는 재정 압박 상황에서 문화와 자산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파이낸셜타임즈, 2024년 10월 5일 자 참조)

이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기업의 비재무 자산, 특히 예술품에 대한 회계 투명성과 공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기업 컬렉션의 소유권과 처분 권한이 어떤 기준과 가치 아래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 계기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재무적 투명성뿐 아니라 구입 및 활용 목적, 보존·대여·매각 등에 이르기까지 수집 원칙이 부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기업가의 개인 취향을 넘어서 큐레이션의 전문성과 수집의 방향성,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려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부에 전문가가 없을 경우, 도이치뱅크처럼 예술위원회나 자문 기구를 두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폐쇄형 컬렉션이 과연 문화의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지속가능경영(ESG)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단순한 소장품 공개에 머물 것이 아니라, 관련 프로그램 개발, 디지털 콘텐트 제작, 정보 접근권 보장, 공공기관과의 협력 및 작품 대여 등을 포함하는 진정한 공유로 확장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소유했는가’보다 ‘무엇을 공유했는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술 자산의 의미 있는 활용은 기업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이는 곧 기업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예술과 어떻게 공존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업 컬렉션이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소유보다 공유의 철학, 과시보다 기여의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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