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성장 공존…캄보디아 구조적 취약성 이해하고 투자 나서야

2025-11-11

앙코르와트로 기억되던 캄보디아가 최근 전혀 다른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 사기 조직의 한국인 피해 사태가 연일 보도되면서, 캄보디아는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와 별개로 캄보디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1~9월 캄보디아는 78억 달러의 투자를 승인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한 수치다. 수출도 2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2.9% 증가했다. 한국 금융사 13곳의 캄보디아 내 총자산 규모만 106억 달러에 달하며,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캄보디아 법인은 2024년 약 16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2년 이후 연간 5~6% 성장에도

산업 기반 취약, 정치적 불안 약점

위험과 기회 관리하는 전략 필요

범죄 문제에 가려져 있지만 캄보디아 경제는 성장세를 이어왔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7% 이상 성장했고, 팬데믹 충격을 거쳐 2022년부터 5~6%대 성장률을 회복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952달러에서 2024년 2183달러로 증가했지만 아세안 국가 중 여전히 하위권에 있다. 농업 중심 경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데다 의류·관광 같은 저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가파른 인구 증가율이 맞물린 결과로 이러한 성장 과정은 구조적 취약성을 동반했다.

이같은 캄보디아 경제의 이면을 이해하려면 3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취약한 산업 기반과 중국 중심 대외 의존 구조다. 한국의 2배 정도인 18만㎢의 넓은 토지와 농업 잠재력을 갖고있지만 수입액의 70% 이상을 중국·베트남·태국 세 나라에 의존한다. 특히 중국 의존도는 심각하다. 2024년 캄보디아와 중국 교역액은 151억9000만 달러로 전체의 30%를 차지했고, 수입의 48%가 중국산이다. 대중국 무역적자가 117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6.6%에 불과하다.

이처럼 특정 국가에 편중된 산업·무역 구조는 위기 때마다 취약성을 드러낸다. 태국과의 국경 분쟁 때 연료·생필품 수입이 중단되자 물가가 급등했고, 태국 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수십만 명이 귀국하면서 가계 소득도 타격을 받았다.

과도한 중국 의존, 경제 취약 요인

둘째, 관광업과 부동산에 대한 높은 의존도다. 2019년 관광업의 비중은 GDP의 18.2%까지 높아졌고, 중국 자본의 카지노·부동산 투자가 몰리며 건설 부문 비중은 12~13%를 차지했다. 2013년부터 시아누크빌을 중심으로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며 한때 100여 개의 카지노가 운영됐고 사업체 상당수는 중국인 소유로 추정됐다. 그러나 2019년 온라인 도박 금지 조처가 내려지며 카지노 불황과 함께 수백 개의 건설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미완성 건물 수천 채가 남겨졌다. 그럼에도 중국의 투자 주도권은 여전하며, 2025년 캄보디아개발위원회(CDC) 승인 투자에서 중국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셋째, 달러화와 현지 통화인 리엘의 이중구조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의 2023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은행 예금의 약 90%가 달러화로 구성돼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험을 낮추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장점이 있지만, 자국 통화 유통이 적어 통화 정책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달러화 중심 환경과 느슨한 금융 규제가 자금 세탁과 범죄자금의 유입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온라인 사기 조직이 캄보디아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금융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부동산과 카지노에 집중된 투자는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로 이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보고서에서 민간부문 부채와 부실채권비율(NPL)이 높은 데다 특히 부동산·관광 분야에 집중된 부실이 금융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산업 다각화 가능성이 엿보인다. 자전거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캄보디아는 유럽연합(EU) 일반특혜관세(GSP)를 통해 무관세 수출이 가능해지며 트렉(Trek)과 스콧(Scott) 등 글로벌 브랜드의 생산 허브로 부상했다.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인건비, 인근 국가로부터 자재 조달의 용이성,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 그리고 팬데믹 기간 불어온 자전거 붐이 산업 성장을 가속화했다.

이러한 자전거 산업의 전략화 사례가 다른 제조업으로 확산한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산업 단지와 항만 인프라 부족, 정치적 불안정성 등 한계는 여전하지만, 미·중 무역 갈등이 이를 상쇄하며 산업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이런 산업 사례를 늘려야 하는 이유다.

이 와중에 대미 수출은 2025년 1~8월 기준 23% 급증해, 미국이 최대 수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층의 노동력과 해외 송금은 가계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현재 약 4만6000명의 캄보디아 근로자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지에는 200여개 한국 기업과 13곳의 금융기관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개발·투자·금융감독 연결 전략 필요

우리는 오랫동안 캄보디아를 ‘도움을 받아야 할 나라’로만 인식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산업·금융·사회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나 ‘퍼주기 식 공적개발원조(ODA)’가 아니라, 캄보디아의 구조적 현실을 이해하고 위험과 기회를 함께 관리하는 실용적 접근이다.

캄보디아의 산업과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의 리스크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발협력과 투자, 금융감독을 하나의 전략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금융감독 협력과 제조업 파트너십 확대를 통해 리스크 관리와 현지 산업 역량 강화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강한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인 한국이 진정한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선 입체적이고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캄보디아의 구조적 취약성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협력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한-캄보디아 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무턱대고 ODA 금액을 늘리는 것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외교적 수사도 전략이 아니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디지털통상 연구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