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냐 일상의 평온이냐···심야 집회 다룬 ‘집시법 10조’ 국회서 입법 논의 재개

2025-08-27

#2020년 3월 서울의 한 주거지역 인근 건설현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의 말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졌다. 경찰관들이 주변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음을 참지 못한 주민이 잠옷 차림으로 집에서 뛰어 나왔다. 새벽이었기 때문이다. 집회 소음은 주거지역 기준인 65㏈을 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수면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주민은 급기야 집회에 쓰이는 스피커 전원을 뽑으려 했고, 경찰은 ‘집회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제지했다.

경찰청 관계자가 지난달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제시한 사례다. 자정 이후의 집회 규정을 다룬 집시법 개정안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예를 들며 심야 집회에서 소음이 발생해도 즉시 제지할 마땅한 규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야간 집회는 2009년부터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에 따라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원칙적으로 옥외집회·시위를 할 수 없었다. 예외적으로 경찰의 허가를 받은 옥외집회는 열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집시법 10조에서 심야 옥외집회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어 2014년 이 조항을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의 시위’에 적용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한정 위헌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24시 이후의 시위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 주거나 사생활의 평온, 시위 현황, 국민의 가치관과 법 감정 등을 고려해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법률 개정이 되지 않아 집시법 10조는 효력을 잃었고 자정 이후 집회·시위도 제한이 풀렸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월 자정을 넘은 시간 서울의 한 관공서 인근에서 집회가 열리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소음 신고 114건이 접수됐다. 2019년에도 서울 도심에서 철야 노숙 집회가 한 달 가량 이어지자 15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 사태로 심야집회는 대폭 늘어났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밤새 이어졌고,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행진에 연대하는 이들이 함께 밤샘 농성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심야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예외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규정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음 기준만으로는 심야집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소음기준을 초과하면 기준 유지를 명령하거나 확성기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만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 현장에서 즉시 대응하기 어렵다. 대신 사후에 벌금·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사례가 많다. 또 기준치 이내의 소음이라도 심야에는 주변 주민들의 휴식을 방해하기 일쑤다. 1인 시위를

집시법을 개정할 때 심야 집회에 대한 금지 규정을 두면 이를 근거로 주최 측에 통고하거나 이후에 처벌할 수 있어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경찰청 관계자는 “심야 집회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평온함을 지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는 “일부 심야 집회로 발생한 민원 등이 있겠지만, 굉장히 이례적인 특수한 사례이고 소음 규제 등으로 충분히 제지할 수 있다”며 “기본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개별적인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하면 집회의 자유라는 더 큰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행안위는 집회·시위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심야 집회 규정 외에도 소음 기준, 혐오표현, 반복영상(음성)재생, 장기농성 등 집회로 인한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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