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최근 여러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벌써 5개월이 지났네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읽어가던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하고 지켜봤기에 오랜만의 인터뷰 기사에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 헌법재판관들이 탄핵심판 결정문을 합의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주심 재판관이 인용론과 기각론 양쪽 버전을 써놓고, 평의 때마다 재판관들이 쟁점별로 인용론과 기각론에 대한 비판과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고 해요. 그러면 주심이 이를 반영해 다음 기일까지 다시 써오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 요건이 안 되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니 위헌’이라는 인용론에 대해 ‘국회의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 탓에 계엄을 선포했다는 피청구인 입장에서도 한 번 정당화해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고, 8명의 재판관이 이를 놓고 논의한 결과 ‘국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정치로 풀어야지 병력을 동원하는 계엄을 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나의 논리에 허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역지사지를 통해 보완해가며 논리적인 완결성을 갖춘 것이죠.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겪고도 정치권이 또다시 사생결단식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정당 해산감”이라는 집권당 대표, “이재명 정권은 삼류 조폭 정치”라는 제1야당 대표 체제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긴 합니다. 여야의 다선 중진들이 위원장과 간사로 나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벌써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한번이라도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독한 말도 좀 순화될 텐데, 부질없는 생각이겠죠. 옳고 그름보다 누구 편인지부터 따지고, 정치가 실종된 공간을 맹목적인 믿음이 채우는 것을 보면 정치 복원은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목표 같기도 합니다. 북·중·러 정상이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중국 열병식에서 연대를 과시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제 또 SNS를 통해 폭탄선언을 날릴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국제 정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고민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유튜브 플랫폼과 팬덤 정치를 기반으로 우리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른바 ‘김어준 현상’을 다룹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하루 전날 얼굴을 내민 곳도, 아침마다 여권 인사들이 몰려가 마이크를 잡는 곳도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인데요. 정파성을 기반으로 비평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게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닙니다만, 계엄 정국과 극우 득세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이젠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정치와 레거시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권력이 된 팬덤 비즈니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