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떻게 전세계적 석유화학 공급과잉의 ‘키’가 됐나

2025-11-14

한국 석유화학 산업 위기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는 연말까지 석화업계에 통폐합을 통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 마련을 주문했지만, 이또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석화 산업 위기는 화학제품 원료가 되는 에틸렌의 전 세계적 공급과잉에서 비롯합니다. 물건을 살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건데요. 이는 중국의 역할이 큽니다. 중국은 2020년부터 에틸렌 생산능력을 키우면서 2022년엔 4500만t으로, 미국(4300만t)을 제치고 세계 1위 국가로 부상했습니다.

15일 한국무역협회 등 보고서와 연구서를 종합하면, 에틸렌은 2018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수요는 1억8800만t였는데, 생산능력은 2억2900만t으로 필요량보다 4100만t 가량 많았습니다. 올해는 예측수요가 1억9500만t으로 조금 늘었지만, 생산능력 2억3100만t과 비교하면 여전히 공급 물량이 더 많지요.

공급과잉 원인 중 하나는 중국의 대규모 석화 설비 증설입니다. 중국은 2020년~2022년 석화 생산설비를 대폭 증설했습니다. 전 세계 설비 증설량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원재료인 에틸렌과 프로필렌 생산설비 증설만 각각 56%와 78%였습니다. 비닐봉투부터 인조가죽,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합성수지들의 생산설비도 적게는 45%에서 많게는 85%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내 에틸렌 생산과 관련해 “2025년까지 100% 자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공격적으로 설비를 늘리면서 가능했던 일인데요. 2021년만 해도 중국의 에틸렌 내수 소비량이 5832만t으로 생산량(2826만t)보다 많아, 3000만t 가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공급부족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대규모 증설로 인해 지금은 공급과잉에 직면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은 수요를 900만t가량 넘어선 5400만t이나 됐습니다. 올해 에틸렌 생산능력은 지난해보다 늘어난 5500만t으로, 예상 수요인 4800만t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 ‘밀어내기’를 가능하게 만든 ‘전쟁과 제재’

중국은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한 에틸렌 등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은 이런 ‘밀어내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특히 2022년 2월 발생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 석화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러·우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러시아 원유에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가 이를 중국에 값싸게 공급한 것입니다.

업계는 중국이 사들인 러시아산 원유가 한국 물량 중 70~72%가량을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보다 배럴당 10~20달러가량 저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중동산 원유 가격의 기준선 격인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 31일 기준 약 배럴당 65달러 수준입니다. 중국이 공급받는 원유는 배럴당 45~55달러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제재를 피해 러시아 해상 유전 구매를 중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제재 대상인 이란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모습도 보였는데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은 지난달 9일(현지시간) 이란 원유 수출에 연루된 50여개 기업·개인·선박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했다고 밝혔는데, 이 리스트에 중국 원유 수입 중 9%를 처리하는 회사도 포함됐습니다. 미국은 지난 3월 수억달러 상당의 이란산 원유를 구매한 중국 정유공장을 제재한 바도 있습니다.

업계는 이란 원유가가 배럴당 2~3달러 정도 저렴했는데 제재로 인해 더 저렴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석화 제품은 ‘전쟁과 제재’ 사이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국내 석화·정유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석화 산업 위기는 공급을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엔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의 동참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중국 정부는 지난 9월 부처 공동으로 석유 화학 산업의 공급 총량을 관리하겠다는 취지의 업무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신규 설비 증설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설비를 증설할 때는 같은 규모 이상을 폐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공급 줄이기에서 더 나아가 비용을 줄이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등 장기적으로 석화 산업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접근 방안도 필요할 것입니다. 국내 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석화 산업은 4~5년 정도에 걸쳐 시장이 좋아졌다가 나빠지는 주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 주기가 10년씩은 돼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예요. 시장 상황만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거죠. 지금은 석화 산업 내 통폐합도 필요하지만, 생산 비용도 줄이고 제품을 고품질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한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러·우 전쟁이 끝나고 이란 원유도 수입할 수 있다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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