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한 사람 도박 끊게 하는 것보다 시장 자체를 박살 내는 게 더 쉽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51)은 도박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다.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건 수긍이 간다. 그런데 음지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도박 생태계를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원천은 그의 이력이다. 그는 현재 인터넷 불법 도박판의 토대를 만든 1세대 기획자였다. 20여년 전 도박 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 팔았고, 중국 등지에서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 스스로 “어떻게 보면 내가 제일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청소년 도박 근절을 지향하는 시민단체 대표로서는 이런 이력이 도움이 된다. 도박판의 생리를 알고 사이트의 아킬레스건을 안다. 지금까지 도박 사이트가 사용하는 계좌 4500개, 가상계좌 100만개가량을 동결시켰다. 도박없는학교를 거쳐 간 학생·학부모만 800명에 달한다. 그는 치유와 예방 교육에 방점을 둔 정부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청소년 불법 도박이 문제가 되고 십수년이 지났는데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청소년 도박 경험은 계속 증가했다. 이제까지 펼친 정책을 돌이켜볼 만하지 않나.” 대면·전화 인터뷰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조호연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0월 27일 경기도 성남시 도박없는학교 사무실. 첫 만남에서 조호연 교장은 대뜸 녹취파일 하나를 재생했다. 앳된 목소리의 남성이 말했다. “잘난 아들 새끼 하나 때문에 돈을 못 받고 있으니까 네 남편한테 얘기하라고.” 약간의 정적 후 중년 여성은 “지금 제가 구하고 있으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후 남성의 욕설이 이어졌다.
조 교장은 “고등학생이 돈 못 갚은 친구 엄마랑 통화한 내용이다. 애는 욕하고 엄마는 존댓말 한다. 부모들이 이런 걸 상대할 수가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도박하다 걸렸다 치자, 적발한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학생 처벌하라고 경찰에 신고하긴 애매하다. 할 수 있는 최대치가 부모한테 전화하는 거다. 부모는 무슨 재주 있나. 청소년 도박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십수년째 이렇다”고 했다.
부모들은 도박 빚을 절대 갚아주면 안 된다. 돈 갚아주는 순간 아이는 비빌 언덕이 있구나 느끼고, 절대 못 끊는다. 일해서 갚게 해야 한다.
-청소년 도박에 대한 정부 대응이 잘못됐다고 보나.
“모든 논의의 결론이 예방 교육 강화로 끝난다. 예방 교육에 예산을 계속 늘려왔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한다고 해보자. 160명 정도는 ‘도박이 나쁜 거구나, 안 해야지’ 생각할 수 있다. 나머지는 ‘저렇게 재밌다고?’ 궁금해한다.”
-달리 해법이 있나.
“도박에 빠진 사람 하나 구제하는 건 어렵다. 더구나 청소년들은 주위가 다 도박하는 게 문제다. 청소년이 도박하는 환경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 청소년을 받는 사이트를 폐쇄해야 한다. 내가 운영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도박 사이트의 영원한 숙제는 ‘원활한 충·환전’이다. 도박 사이트들이 계좌가 있어야 돈을 받고, 세탁하고 돌려줄 수 있는데, 필요한 계좌가 100개면 시장에 80%밖에 공급이 안 된다. 계좌만 잡으면 도박 사이트는 살아갈 수가 없다.”
-계좌를 어떻게 잡나.
“2020년에 도박없는학교 설립하고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계좌를 실시간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법원 판결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일이 안 풀리니 경찰이랑 싸우고. 경찰에 고발인 조사받으러 가면서 언론사 대동하고 가니까 조금씩 풀리더라. 지금은 은행권이랑 핫라인도 맺었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입금한 도박 사이트 계좌를 추려 오면, 급한 건 1시간 만에 동결시킬 수 있다.”
-성과가 있나.
“사이트가 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받으면 계좌를 동결시키고 있다. 사이트들이 청소년 못 오게 막을 수 있다. 성인 인증, 주민등록증 인증, 명함 인증받으면 된다. 지금 소위 ‘메이저’라고 불리는 도박 사이트들의 80%는 청소년 안 받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친구가 아들이 도박에 빠졌다고 아들을 만나 달라고 했다. 불러서 얘길 들어보니 심각한 줄은 알았는데 학교가 완전히 도박판이더라. 애들이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들끼리 채권자, 채무자가 됐다. 학교에서 매일 얼굴 보는데 돈 못 갚으면 폭력, 고문을 해도 어디 알리지도 못하고 용인하더라. 이거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일조한 게 있다. 바다이야기가 나올 무렵에 서른 살이었는데 성인오락실에 들어갈 아케이드 게임기를 만들어 팔았다. 바다이야기가 사회문제가 되고 불법이 되면서, 내가 먼저 온라인으로 넘어가 도박 게임들을 기획했다. 청소년 도박 근절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6개월이면 박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길어지면서 빚만 1억원이다. 결과를 좀 내면 정부가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안 따라온다.”
-도박 사이트들로부터 위협은 없나.
“초창기에 누가 우리 집 대문 사진을 찍어 보냈다. 신경도 안 쓴다. 불법 도박 조직은 이미 벌 만큼 벌어놨다. 가진 게 많으면 잃을 게 많으니 무리수 안 둔다. 그보다 돈을 준다느니 회유가 많다. 먹는 순간 코 꿰어서 패가망신한다.”
-학교가 도박판이 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그 나이대 아이들은 친구들과 안 놀면 생활이 안 된다. 도박이 아닌 게임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사이트에 들어간다. 도박 사이트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측면도 있다. 신규 사이트가 오픈하면 막막하다. 마케팅해야 하는데 키워드는 광범위하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때 마케팅 전략 중 하나가 ‘청소년 공략’이다. 돈도 아닌 포인트만 잘 활용해도 이 사이트, 저 사이트에 광고해주는 블랙마케터 100명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교육 당국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더 잘할지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것 같다. 한 번 잘못이 있어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좋은 예방 교육은 아이들한테 도박이 나쁘다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도박보다 재밌는 게 많다는 걸 가르치는 것이다. 도박 문제로 도박없는학교를 찾았다가 꾸준히 활동하는 아이가 50명 정도 있는데 피아노든, 노래든, 운동이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자녀의 도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까지 지켜보면 가정형편이 안 좋은 애들은 오히려 도박을 끊을 수 있다. 형편이 좋을 때 오히려 못 끊는 경우가 많더라. 부모들은 도박 빚을 절대 갚아주면 안 된다. 돈 갚아주는 순간 아이는 도박을 하든 뭘 하든 비빌 언덕이 있구나 느끼고, 절대 못 끊는다. 일해서 갚게 해야 한다. 바빠서 딴생각 안 들고, 경제 관념도 생긴다. 아이들 교육보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직시하도록 부모들을 교육하는 것이 낫다.”
-향후 계획은.
“조만간 불법 OTT, 불법 웹툰 사이트와 전쟁할 거다. 이런 사이트들은 광고주인 도박 사이트 후원으로 운영된다. OTT 사이트에 광고하는 도박 사이트들을 옥죌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