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림재해 예방을 명분으로 추진한 임도 확대 정책이 오히려 산사태 위험을 키웠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왔다. 산림청이 ‘임도 물량 확대’에만 집중한 결과, 필수 안전 구조물 없이 부실 시공한 사례가 다수 확인되면서다.
감사원이 최근 내놓은 ‘산림사업 관리·감독 실태’에 따르면, 2021∼2023년 신설한 1531개 임도 가운데 135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76%(103곳)에서 옹벽 등 산사태 방지 구조물이 설치되지 않았다. 현행 ‘산림자원법 시행규칙’은 성토사면 길이가 5m를 넘을 때 옹벽·석축 등의 구조물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급경사지 38곳, 총 24.2㎞ 구간에 임도를 개설하면서도 절반 이상인 12.5㎞ 구간에 순절토 시공(땅 깎기로 발생한 흙 등을 치우는 공사)을 하지 않았다. 산림자원법 시행규칙은 급경사지에 임도를 내면 순절토 공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도 개설 자체가 불가능한 지형 15곳에 공사가 강행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부실 시공의 근본 원인으로 산림청의 ‘물량 우선’ 정책 기조를 꼽았다. 산림청은 임도를 2030년까지 3만4990㎞로 늘리는 계획을 세우고 지방산림청 평가 지표에 ‘임도 신설 실적’을 반영했다. 이에 지방산림청 등은 예산 부족에도 불구하고 실적을 맞추기 위해 옹벽 등 안전 구조물을 생략하고 수치 채우기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산림조합과의 관행적 수의계약을 지목했다. 산림청이 산림조합에 수의계약으로 발주한 비율은 2019년 87.2%(4677억원)에서 2023년 95.5%(5645억원)로 늘었다. 하지만 조합의 기술 인력이 부족해 1명의 현장대리인이 최대 6곳을 관리하거나, 기준에 미달하는 인력을 허위 신고한 사례도 적발됐다.
감사원은 산림청에 관련자에 대해 문책할 것을 요구하고, 경쟁 입찰 확대와 부실 업체에 대한 제재 조치를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김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