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 대통령 선거라는 대형 이벤트에 묻힌 두 죽음이 있었다. 지난달 2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오피스텔 앞에서 추락사한 두 여성의 시신이 수습됐다. 범죄 혐의점은 없었다. 모녀 사이인 이들은 지난해 생활고를 이유로 지자체에서 긴급복지 상담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뒤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아파트에선 또 다른 모녀의 시신이 유서와 함께 발견됐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아니었지만,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등 생활고를 겪고 있는 통합사례관리 대상자였다.

한 달 사이 생활고로 두 모녀가 생을 등졌는데 정치권에선 논평 한 줄 찾아보기 어렵다. 여야 모두 대선 승리에 골몰하느라 마땅히 직시해야 할 죽음을 등한시하고 있다. 후보들이 민생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잘사니즘’이니 ‘약자와의 동행’ 같은 문구가 공허하게 느껴진다.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이슈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주목받지 못한 뉴스도 있었다. 통계청이 2024년 자살 사망자 수 통계 잠정치를 지난 2월 발표했다.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4439명으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에 약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정부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난 심화 등 코로나19가 남긴 후유증이 본격화하면서 자살이 늘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10년 안에 자살률을 절반으로 감축하겠다”(2023년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는 계획이 시작부터 삐끗했다는 적신호였지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난은 수많은 이들을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지만, 끝끝내 그들을 삶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건 제도와 사회의 무관심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달 25일 자 본지 기고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살은 공동체 붕괴의 직접적인 신호 중 하나”로 “자살 위기에 대한 지지대 역할을 대가족과 이웃이 해왔는데 이를 대체할 자리가 공백”인 상황이다.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인도 뭄바이의 세 여성이 팍팍한 삶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일로 일하러 간 남편은 연락이 두절되고, 힌두교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는 무슬림 남자친구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남편이 죽자 20년 넘게 산 집에서 쫓겨나는 등 크고 작은 고난이 이들의 삶을 덮친다. 세 여성은 서로의 친구이자 이웃으로서 고통을 나누며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을 함께 이겨낸다.
지난달 발생한 수원 두 모녀 사망 사건은 한국 사회에 이런 이웃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생을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이 공백을 메꿀 제도적 보완책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 무관심 속에 스러진 두 모녀의 죽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