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게일 캐리거 지음 | 송경아 옮김
원더박스 | 368쪽 | 2만원

이마에 번개모양 흉터를 지닌 남학생 해리 포터는 ‘여성 영웅’(heroine)이고, 별이 그려진 머리띠를 한 여전사 원더우먼은 ‘남성 영웅’(hero)이다. 미국의 고고학·인류학자이자 판타지 소설가인 저자의 분류에서는 그렇다.
저자가 말하는 남성 영웅은 악당을 물리쳐 영광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연인을 잃는 등 결국 혼자가 된다. 여성 영웅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좋은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승리한다. 도움을 청하는 게 남성 영웅에게 죄악시되는 것과 다르다. 헤르미온느와 론, 그리고 호그와트 (대안) 가족과 ‘함께’ 절대 악 볼드모트에게 맞서 싸우는 해리 포터가 성별과 관계없이 여성 영웅인 이유다.
책은 유쾌한 어투로 쓰인 작법서다. (미래의) 작가들이 구조를 대입해볼 수 있도록 남성·여성 영웅 서사를 구성하는 비트(서사 내 가장 작은 이야기 단위)를 예시를 들어 제시한다.
고대 신화에 관심 많은 독자라면 더 흥미로울 책이다. 고고학·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그리스·로마의 데메테르, 이집트의 이시스, 수메르의 인안나 신화를 여성 영웅 서사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물러남과 고립, 대안적 네트워크의 도움, 파국이 아닌 협상과 타협 등 서사 구조의 비트를 나눠 설명한다. <해리 포터>와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 대중적으로 흥행한 작품도 살핀다.
저자는 “독자나 작가가 한 여정을 더 좋아하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다”면서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낫다고 여기는 일이 문제”라고 말한다.
여성 영웅 서사의 작법이 곧잘 쓰이는 로맨스물이나 스페이스 오페라 등 장르물의 작품성이 자주 폄하되는 것에는 솔직한 불만을 표한다. 그는 “남성 영웅의 여정은 비평적으로 ‘가치가 있는’ 반면 여성 영웅 여정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이제 그만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연대를 말하는 서사의 즐거움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