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만 쏟아진 초국지성 호우에 신발까지 홀딱 젖고 말았다. 요새 날씨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신발을 말리려 탁상용 선풍기를 무리하게 꺾다가 망가뜨렸다. 선풍기를 새로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대체 이 더위가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던 4월도 더웠는데, 이 더위는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다.
여름은 여름인데 내가 알던 여름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선의 협상 결과를 이뤄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미 동맹도 예전의 한미 동맹이 아닌 듯싶다. 언제부터 전 국민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밤새워 마음을 졸였단 말인가.
장동혁 신임 국민의힘 대표도 내가 알던 비교적 합리적인 장동혁 의원이 아닌 듯하고 그를 대표로 뽑은 국민의힘도 더 이상 정통 보수정당이 아닌 것 같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모든 게 겉보기에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어딘가 기존과 다르다. 우리가 세계라고 믿었던 것은 사라지고 패러디만이 남은 듯하다. 딛고 선 땅도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 땅 모양을 흉내 낸 슬라임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멀미가 난다. 정치인인 필자가 민주주의적 행동이라 믿고 던진 행동들도 가끔은 어딘가 오조준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민주주의도, 국가도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된 것일까.
도통 이 세계는 움켜쥐어지지 않고 흘러내리기만 한다. 많은 정치인이 세계를 다시 단단히 짓기보다는 그냥 이 미끄러짐에 몸을 맡기고 즐기기로 한 모양이다. 계엄령으로 파면된 대통령마저도 우리가 생각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뉘우치는 것도 아니고 ‘빌런’의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 역시도 이 세계를 단단히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보적 중도 정당들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산업 발전과 노동권 보호의 병행, 사회보장과 다양성 증진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이라는 정책 패키지를 하나의 정답처럼 공유해왔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은 안정적 고용과 사회보장 확대를 보장하지 못했고 다양성 확대는 혐오 정치로 이어졌다. 통상 전쟁 속에서 자국 이기주의의 기승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 현실주의라는 표현은 너무 얌전한 서술이 돼버렸다.
우리 민주당은 민주주의 선진국의 진보적 중도 정당들이 먼저 간 정책적 패키지의 큰 틀을 좇아왔다. 민주당의 일원이자 차세대로서 고민이 깊어진다. 우리 정치인들은 공익과 국익을 위해 사심 없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계엄령 사태 이후 우리가 보여줄 세계는 무엇일까. 국민들에게 단단한 일상, 계획 잡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의 정치적 개인기에만 기대다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가 세계라고, 국가라고 믿었던 것도 실은 역사적 구성물이다. 언제든 또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2025년의 대한민국과 세계는 어떻게 기록될까. 튼튼한 세계로의 반등점이 됐다고 평가되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