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경험은 무용한 것인가?

2025-08-28

동서양 세력의 재균형, AI 디지털 혁명, 민주주의의 퇴조, 인구구조, 기후변화가 함께 맞물리는 대전환기에 들어서며 세계는 지금 깊은 혼돈 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 80년 세계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이 나라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며 전 세계 정치, 경제, 안보 지형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에서도 극우파의 지지세가 점점 드세지고 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소득과 부의 양극화,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포용 부족, 절제되지 않은 탐욕 추구가 엘리트들과 기존질서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일으켜온 결과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언론과 여론형성 통로의 변화가 가져오고 있는 결과다. 역사는 늘 이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변화와 새로운 인물의 출현을 경험하게 되었다. 트럼프의 등장, 미국의 역할 변화, 유럽정치 지형 변화도 이런 흐름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미국 관세정책, 자국의 쇠퇴 재촉

유럽 등 관세 맞대응 자제 합리적

포퓰리즘 정치 수렁 빠지지 않도록

통합과 포용적 경제정책 강화돼야

그럼에도 지금의 세상 흐름은 우리에게 깊은 불안과 우려를 자아낸다. 트럼프 취임 이후 지난 6개월간의 관세전쟁이 트럼프 협상술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는 평가도 많다. 유럽과 일본, 한국, 호주 등은 미국 수출에 더 높은 관세를 지불하게 되면서도 오히려 미국 상품에 더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더 많은 투자를 약속하면서 당초 협박받은 만큼의 관세를 물지 않게 되었다고 안도하고 있다. 경제학 이론이 늘 옳은 것은 아니나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결국 미국경제에 인플레와 생산비용 상승을 가져와 미국제품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첨단기술 혁신능력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로 전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몰려들어 트럼프 정책이 초래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나름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관세정책은 세계를 1930년대로 회귀시키며 궁극적으로 미국과 세계 경제의 침체, 국제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 연준에 대한 금리인하 압박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존중은 이념과 철학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의 압력을 아서 번즈 당시 연준의장이 금리인하와 통화확대로 수용한 것이 석유파동과 맞물리면서 세계적 인플레를 유발한 경험에서 1980~90년대 주요국 정부들 스스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1997년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영란은행 독립성을 강화하는 법을 제정하면서 “이전의 법은 정부가 단기적 경기부양 목적으로 지나치게 통화를 팽창해 결국 지속 불가능한 성장과 인플레를 가져왔다”고 진단하고 “영란은행 독립성 강화는 근시안적인 정치 개입으로부터 보다 장기적이며 투명한 통화정책 결정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정부 권한축소를 수용하였다.

경제적 성과는 단순히 경제정책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나라 제도와 조직의 건전성, 이에 대한 신뢰라는 경제외적 기반이 합쳐져서 이뤄진다. 트럼프 시대가 가져오게 된 미국의 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 저하는 궁극적으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 저하를 가져오며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을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미국이 지난 80년 기축통화국으로서 국제금융 질서와 세계 질서를 주도해왔던 가장 주요한 요인은 미국의 경제력과 더불어 미국제도의 건전성과 합리성, 다자간 기구를 통한 포용적 대외정책에 기반한 신뢰자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금 미국은 너무 쉽게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이 견제하려는 중국의 빠른 상대적 부상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유럽, 일본, 한국 등이 미국에 대해 보복관세로 맞대응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고, 미국이라는 가장 큰 시장에서 경쟁 상대국들보다 더 높은 관세를 맞지 않기 위한 단기적 고육지책이긴 했지만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대응이다. 보복관세로 대응하는 것은 모두가 패자가 되는 확실한 길이다. 그것은 단순히 국내 인플레와 생산비용 상승뿐 아니라 관세장벽으로 보호를 받으려는 업자들의 대정부 로비와 부패, 나아가 국가 간 갈등으로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지식을 부정하고 검증되지 않은 논리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세계를 흔들면서, 이 세계는 점점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불안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어느 나라나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의 불신과 울분이 정치를 점점 더 포퓰리스트적 수렁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우리도 포용적 경제정책과 통합적 리더십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전통 언론의 여론 형성 역할이 축소되고 여과되지 않은 SNS가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이 세상에서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지식들이 좀 더 공명을 얻도록 지식인들은 스스로 소통의 공간을 넓히려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할 때라 생각된다.

조윤제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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