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기술 개발
농장단위로 11종의 기상정보 예보
폭염 등 재해 예상땐 대응법도 고지
미래는 데이터 기반 농사짓는 시대
작물 재배환경 예측·생육 정보 분석
불량환경에 강한 신품종 개발 온 힘
품종개발 모든 과정, 디지털로 전환
2027년까지 육종 정보 플랫폼 구축
푸드테크 등 첨단기술 확보도 박차
농촌진흥청은 우리 농업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배 곯던 시절 ‘통일벼’를 개발해 국민 먹거리를 책임졌고, 수많은 농기계를 개발·보급해 우리 농업을 발전시켰다. 개청 63년을 맞은 농진청은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구구조 변화와 기후위기에 대응해 농업이 미래 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권재한 청장이 있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으로 ‘앞으로의’ 농진청을 그리고 있다.

권 청장은 무엇보다 효율과 실용을 강조한다. 청장 취임 전 농림축산식품부에 근무할 때도 이른바 ‘힘든 상사’로 꼽혔다. 하지만 그가 총괄했던 분야에서는 어느 때보다 뛰어난 실적을 달성했다고 평가받는다. 효율과 실용은 권 청장의 현장행보에도 드러난다.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현장 방문 횟수만 94회에 달한다. 사흘에 한 번은 농업 현장에 있었다는 뜻이다. 취임 1년을 앞둔 권 청장을 지난 16일 세계일보 본사에서 만나 우리 농업의 미래와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농진청은 일반 국민에게는 낯설다. 주로 어떤 일을 담당하나.
“농진청은 1962년 농업과 농생명 산업 분야의 발전을 위한 연구개발부터 이를 현장에 보급하는 역할까지 폭넓게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품종, 농기계 개발뿐 아니라 식품 저장기술, 기능성 식품 소재 발굴, 농림 위성 발사 준비 등 우리 농업이나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 분야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농산업 현장에 보급하는 일을 담당한다. 쌀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일본 품종이 많았지만, 이제 대부분 국산 품종을 먹는다. 경기도 이천쌀은 해들이라는 품종, 전북 지역은 신동진이라는 품종이 유명한데, 이 모든 게 그동안 농진청이 개발한 품종이다.”

―최근 기후 이상 등 기상상황으로 인한 농업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연구 중인가.
“기상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상과 재해를 예측해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상청은 사방 5㎞ 정사각형 격자로 나눠 각 격자에 해당하는 기상정보를 제공하는데, 아무래도 도시 중심이다 보니 농촌의 논, 밭까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농진청에서는 기상청 예보를 기초로 사방 30m의 미세 격자로 더 잘게 분해해 농장(필지) 단위로 예보해 주는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기술을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농장의 지번과 작목을 입력하면 농장 단위로 11종의 기상정보를 예보해 주고, 동해·폭염 등의 재해가 예상되면 경보와 함께 대응 기술도 알려주고 있다. 현재 110개 시·군에 제공하고 있고, 올해 10월까지 155개 모든 농촌지역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취임 후 중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민관협업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최근 들어 기후위기, 고령화, 식량안보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안들을 보면서 농진청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다는 생각이다. 농업·농촌의 현안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많은 내부 토론과 학계, 산업계, 농업인단체 등과 여러 차례 토론과 협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농업R&D(연구개발)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지난 2월25일에는 민관협업 기반 융복합 프로젝트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혁신방안의 큰 원칙은 ‘농진청보다 기술력이 뛰어난 분야는 누구와도 협력한다’, 농업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AI, 컴퓨팅, 물리, 화학, 로봇 등 타 산업분야 학문과의 융합을 통해 농업 현안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겠다는 두 가지로 삼았다.”

―실제 어떤 내용이 진행되고 있나.
“올해는 3440억원을 들여 변화와 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정책지원·현안해결을 위해 기후변화에 대비한 디지털육종, 밭농업 기계화,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 등 10개 분야와 장기적으로 농업위성, AI, 로봇, 푸드테크, 마이크로바이옴, 동물오가노이드 등 미래 첨단 기술 확보를 위한 기틀 마련에 힘쓸 계획이다.”
―논농업에 비해 밭농업은 여전히 농민이 직접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밭농업기계화를 위한 연구 노력과 앞으로 계획은.
“인구감소, 농촌 노령화, 노동력 부족 등 각종 사회지표를 고려할 때 농작업 기계화는 서둘러야 할 시대적 과제다. 벼농사 기계화율은 99.7%로 완성 단계인데 반해 밭농업 기계화율은 20203년 기준 67%다. 전년 대비 3.7%포인트 상승했지만 아직 벼농사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밭농업은 작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작물마다 생육 특성과 재배법이 달라 기계화의 난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경남 창녕에서 1만3000평 마늘 농사를 하는 청년농을 만났는데 기계화하기 전에 6000만원의 인건비가 들었다면, 기계화한 후에는 인건비·기계임차비를 합해서 1200만원으로 비용이 줄었다. 경제성 있는 농기계 개발과 함께 시군 농기계 임대사업소에 보급을 늘리고, 유통과정에서 기계화를 저해하는 제도나 관행 정비도 중요하다.”
―밭농업기계화율 목표치나 작물별 계획이 설정돼 있나.
“2027년까지 파종·정식·수확기를 중점 개발해 주요 8개 밭작물에 대한 생산 전 과정 기계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는 마늘, 양파 기계화 기술의 완성과 보급·확산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배추·감자 등으로 작물을 확대하고 기계화가 미흡한 정식, 수확기 7종을 우선 개발하는 게 목표다. 밭농업 기계화를 추진하면서 작물 재배단계 중에서 경운·정지와 비닐피복 및 방제 부분은 기계화율이 높은 편이지만,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파종·정식 및 수확작업 부분의 기계화율은 저조하다. 특히 배추와 고추 재배농가는 파종·정식 및 수확작업 단계에서 기계보다는 수작업이 많은 실정이다. 앞으로의 밭농업기계화 추진방향은 기계화가 미흡한 배추, 고추, 감자, 양파 중심으로 파종·정식과 수확기 개발을 계획 중이다. 올해 안에 배추, 감자, 양파, 고추용 기계 7종을 개발하고 2027년까지 마늘, 콩, 무, 고구마용 기계 개발이 목표다.”

―스마트농업 개발은 어느 수준인가.
“그동안 농업은 주어진 자연조건에 순응해 농사를 지었다면 앞으로의 농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물이 자라는 데 최적의 생육환경 조건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 시대다. 예를 들어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농민이 1월 온실 내부 온도, 습도, 양분 공급량 등 생육 환경조건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운영한 결과 평균적으로 1주일에 10a당 160㎏ 수확이 가능했다. 농진청이 많은 농가의 환경과 생육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량을 최대 1.8배(292㎏)까지 늘릴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제시했다. 올해는 작물의 재배환경과 생육 데이터 수집 품목을 21개 작물로 확대하고 16품목의 지능화 영농 의사 결정 지원 모델을 개발했다. 개발한 기술은 23개 민간 업체에 이전해서 농가 보급을 돕는다.”
―시설 스마트농업과 달리 노지스마트팜 개발은 어느 정도 왔나.
“노지 작물의 스마트농업은 시설재배와 달리 모든 환경을 제어할 수 없지만 여러 센서와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환경을 예측하고 기계화와 자동화를 통해 농작업을 쉽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노지 스마트농업은 핵심 요소기술 중심으로 개발 중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9개 노지 스마트농업 시범지구를 지정해 200여 농가와 기술력이 우수한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노지 스마트농업 시범지구 9개를 운영 중이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융복합 기술이 투입되고, 조성 이후 2031년까지 5년간 실증을 통해 현장에 맞게 성능과 경제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품종 개발은.
“기후변화는 단순히 평균 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아니라 혹한, 폭염, 폭설, 폭우와 같이 기상환경 변화의 진폭이 커지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고온, 저온, 일조량 부족과 같은 불량한 환경과 이에 따라 늘어나는 병해충에 잘 견딜 수 있는 품종 개발이 중요하다. 기후변화 적응형 품종은 지난해까지 356종을 개발했는데, 최근 10년 기준으로 보면 매년 18종 내외의 품종을 개발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고온에도 착색이 잘 되는 사과나 키다리병 같은 특정 병해에 잘 견디는 벼, 더위에도 잘 자라는 배추 같은 품종이다.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농진청이 디지털 육종을 전면 도입한다는 데 있다.”

―디지털 육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기존의 육종 기술은 육종가의 오랜 경험과 머릿속에 있는 지식 또는 수첩에 기록된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그러다 보니 기술공유가 힘들고 육종가가 바뀌면 기술이 단절되는 문제가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종개발 전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올해 ‘국가디지털육종플랫폼’을 구축하고 2027년까지 59개 품목별 핵심집단, 유전체, 표현체 등 표준화된 육종정보를 플랫폼에 축적해 민간에 개방·공유할 계획이다. 내용이 좀 어렵지만, 쉽게 얘기하면 육종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학계, 산업계, 육종가와 공유해서 대한민국 종자업계가 새로운 품종개발을 시도할 때 첫 출발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시작하고, 육종시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K농업기술의 국제적 역할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 높아진 국격에 걸맞은 역할이 중요한데, 농업이 가장 적절한 분야다. 우리는 1970년대 주곡인 쌀을 자급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산업화에 성공해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농업 협력을 통해 개발도상국, 저개발국가에 전수 중이다. 현재 65개국의 농업기관과 글로벌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다녀온 파키스탄의 경우 농진청과 기술협력을 통해 무병 씨감자 자급시스템을 구축했고, 이후 씨감자 생산성이 6배 이상 늘어났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1968년 출생 ●대구 경북고 ●고려대 경제학 ●美일리노이대 경제학 석사 ●건국대 축산경영학 박사수료 ●행정고시 37회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 ●주미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공무원교육원장 ●〃 유통소비정책관 ●〃 차관보 ●〃 농업혁신정책실장 ●농촌진흥청장(2024년 7월∼현재)
대담=우상규 경제부장, 정리=안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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