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는 농가수가 줄어드는 것을 곧 농촌 붕괴로 여기는 시각이 강하다. 농촌 고령화, 학교 폐교, 유휴 주택 증가는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농가수 감소가 반드시 농촌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안보를 달성한 네덜란드는 1950년대 중반부터 농업의 생산성과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 조정에 착수했다. 핵심은 ‘규모화’와 ‘전문화’였다. 소규모 영세농이 난립하던 구조를 효율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정부는 농지 통합을 추진했고, 농업 교육, 농민 은퇴 유도, 기술 혁신 등을 결합해 농가수를 계획적으로 줄여나갔다.
그 결과 1950년 약 41만가구였던 농가는 2020년 기준 약 5만가구로 감소했다. 70년간 8할 이상 줄어든 것이다. 고용인구 기준으로도 1950년대에는 전체 노동력의 10%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지만, 2020년에는 2%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네덜란드 농업은 ‘작아진’ 것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오히려 ‘강해졌다’. 농가수는 급감했지만, 첨단 기술과 효율적인 시스템 덕분에 농업 총생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현재는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세계 3위 농산물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첨단 온실’이 있다. 리베스트란트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유리온실은 세계적 모범사례다. 자동화된 수경재배 시스템, 기상 제어, 이산화탄소 공조시설 등을 갖춘 이 시설은 제한된 면적에서도 고품질 채소, 꽃, 종자 등을 연중 생산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온실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세계 평균의 5∼10배에 이르며, 수출되는 절화는 세계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한다.
농촌은 생산 중심에서 다기능 공간으로 전환됐다. 농업 외에도 복지·교육·관광 등을 결합해 농촌 경제 기반을 다변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케어팜(Care Farm)’이다. 고령자·장애인·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농장에서 요양과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모델은 전국에 1300개 이상 운영 중이다.
농촌은 이제 농업만이 아니라 삶의 질과 복지, 치유와 체험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확장됐다. 청년농부를 유입하기 위한 정책도 병행됐다. 농업전문대학 등 실무 중심 교육기관은 디지털 농업, 지속가능한 경영 모델을 교육한다. 유럽 전역에서 청년들이 모여드는 ‘혁신 농업 허브’로 농촌의 위상을 재정립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변화가 단절 없이 60년 넘게 지속됐다는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농업과 농촌정책의 방향은 일관됐고, 정부와 농민, 연구기관, 시민 사회가 함께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조율해왔다. 네덜란드는 농가수만 줄인 것이 아니라, 농촌의 역할을 재정의했고 그에 맞는 구조를 설계하며 실천했다.
이제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우리는 농가수를 지키기 위해 소농 중심 정책을 고수하고 있지만, 과연 지속가능한가? 단순한 수적 유지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제는 구조의 전환이 더 중요하다. 한국 농촌도 교육, 복지, 스마트 농업, 공동체 회복을 아우르는 다기능 공간으로 다시 설계돼야 한다.
숫자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네덜란드는 줄여서 살렸고, 우리는 농가인구 붕괴를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농가수는 줄어도 농촌은 새로워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줄이고, 무엇으로 채우느냐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