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동생 죽였다고 해" 허위자백 시킨 새엄마…또 다른 '어린 의뢰인' 안 나오려면 [김수호의 리캐스트]

2025-05-11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문학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지난달에도 소리(가명)가 사무실에 찾아왔어요. 어느덧 밝고 예쁜 대학생이 됐죠. 저희 사무실 갤러리에서 소리가 그린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예전엔 다소 어두웠던 그림이 지금은 몰라보게 밝아졌어요.”

2014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영화 ‘어린 의뢰인’의 모티브가 된 사건)의 피해자인 소리와 10년이 넘도록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다. '아동·여성 인권의 대모'라 불리는 이명숙(62) 변호사다. 11년 전 ‘어린 의뢰인’ 소리의 손을 잡아준 변호사, 이명숙 법률사무소 나우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변호가가 도맡아온 사건들 중 영화화된 사례만 5건에 달한다. 칠곡·울산 계모 사건, 도가니(인화학교) 사건, 조두순 사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세월호 사건 등이다. 이 변호사는 아동학대와 관련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며 “여전히 사회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이슈가 되면 전 국민이 응원해주지만, 관심이 잦아들면 피해자는 결국 혼자 남는다. 이 변호사가 수많은 피해자들과 계속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는 이유다.

35년차 여성·아동 전문 변호사인 그가 수임한 사건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건 2013년 연이어 발생한 칠곡·울산 계모 사건이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됐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어린 의뢰인’의 배경이 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치사사건은 2013년 8월 경북 칠곡군에서 계모 임모(37)씨가 막내 의붓딸을 폭행해 살해한 사건이다. A씨는 8살 딸을 숨지게 한 뒤에 11살 언니 소리에게 허위자백까지 강요했다.

당시 임씨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상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임씨에게 징역 15년을 확정했다. 학대 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친아버지 김모(39)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직후 이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법원이 칠곡 계모사건 항소심 형량을 유지한 판결을 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에 맞지 않는 것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같은 해 발생한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도 맡았다. 2013년 10월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고 말한 의붓딸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울산 계모’ 박모(40)씨는 결국 항소심에서 상해치사죄 대신 살인죄를 적용받았다. 흉기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처음으로 살인죄를 인정한 사례다.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이 변호사는 “해당 사건 이후 아동학대 살인죄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아동학대…근본적 예방책은?

그러나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아동학대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아동학대로 신고 접수된 건은 4만 8522건으로 2022년(4만 6103건) 보다 5.2% 증가했으며, 최근 5년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학대행위자 중 부모의 비중은 85.9%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아동학대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 중 하나는 ‘관대한 처벌’이다. 2017∼2021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자유형을 선고받은 565명 중 381명(67.4%)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21년 1월 아동학대 처벌법을 개정한 ‘정인이법’이 통과된 이후 아동학대 살해죄가 신설돼 무기징역 또는 징역 7년 이상의 형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일반 살인죄와 비교했을 때 아동학대 살해죄의 형량이 낮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변호사는 “아동학대 살해죄로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주 높아야 징역 20~30년에 처해진다”며 “‘부모’라는 이유로 형량을 깎아줄 게 아니라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동학대 유형 중 ‘정서적 학대’나 ‘방임’으로 처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다른 유형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형량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봤다. “근본적인 예방책은 ‘당근과 채찍’이라고 생각해요. 엄벌에 처하는 게 채찍이라면, 아동학대 예방 및 사회 교육 강화, 피해 아동 보호 체계 강화, 학대 재발 방지를 위한 감시 시스템 마련 등이 당근에 해당하죠.” 그는 “단지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사건 이후 피해 아동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족한 예산도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학대아동 예산을 삭감하고, 그 이유로 “아동학대 발생 건수가 줄고 있고, 지자체의 쉼터 신규 설치수요가 낮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 아이들인데 관련 예산이 너무 적다”며 “정치권에서는 아동 문제를 후순위로만 둔다”고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 ‘방문객’ 中)

이 변호사에게 무료로 공익사건을 담당해온 이유를 묻자, 좋아하는 시가 있다며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읊어주었다. “아동학대나 성폭력 등을 다룰 땐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피해자라는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요. 이 시가 일종의 좌우명인 셈이죠.” 시를 읊는 그의 입가에 따뜻한 인간애가 배어 있었다.

자타공인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인 그는 업계에서 ‘조정의 달인’으로도 유명하다. 이혼소송까지 가지 않고 부부 모두 ‘윈윈’ 할 수 있게끔 조정이혼 절차를 이끌어내서다. ‘여전히 이 자리에서 할 일이 많다’는 이 변호사는 “지금껏 그래왔듯 여성·아동 관련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며 “후배 변호사들이 공익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변호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인간을 향한 사랑과 연민을 안고, 이 변호사는 오늘도 의뢰인들을 만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