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2부] 기후변화, 이렇게 대응한다 (3) 식량작물, 품종으로 승부한다 인디카, 세계 쌀 유통의 대부분 기온 오르자 재배 가능성 보여 이주민 늘며 국내서 수요 증가 농진청, 본격 국산화 연구 돌입 해외 공략할 가공용 개발 목표

“거대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봐야죠. 기후변화를 기회로 삼는다면 국산 인디카 쌀도 반도체·자동차처럼 수출 효자 품목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경남 밀양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시험포장. 이곳에서 만난 농진청 연구진은 시험포장에서 자라고 있는 인디카 벼 생육을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국내 농촌에서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라는 말과 거의 동급으로 쓰인다. 하지만 급변하는 기후가 반드시 위협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인디카 쌀 재배는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이끄는 대표 주자다.
벼는 크게 단립종인 자포니카와 장립종인 인디카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소비되는 쌀은 자포니카다. 쌀알이 상대적으로 짧고 통통한 이 계열은 밥을 지었을 때 부드럽고 찰진 식감이 특징이다. 인디카는 쌀알이 길쭉하고 밥을 지으면 훌훌 날린다.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서 주로 소비되고 국수·파스타·볶음밥 등에 활용된다. 국제적으로는 인디카가 전세계 쌀 유통량의 90%를 차지한다.
덩치가 큰 세계 인디카 쌀시장에 그간 한국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인디카는 열대·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온도·일조량 등 재배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선 재배할 수 없는 품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디카 재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나오면서다.

윤영식 전남 해남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21년부터 세종대학교와 협력해 인디카 쌀을 재배 중”이라면서 “한국 재배환경에 적합한 장립종 품종이 육종된다면 인디카 쌀은 가루쌀(분질미)과 함께 쌀 공급과잉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변하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농진청이 올해부터 5년간 ‘장립종 벼 기반 쌀산업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디카 쌀 품종과 재배기술 정립을 위해 CJ제일제당·건국대학교·전남대학교·국제미작연구소 등 민·관·학·연이 사상 처음으로 공동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들은 가공에 적합한 한국형 인디카 벼 품종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민·관·학·연이 의기투합한 데는 국내외 인디카 쌀시장을 놓치면 국내 쌀산업의 미래가 어두워진다는 절박함도 자리했다. 농진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 체류 중인 동남아 국적 인원은 85만명으로 2007년(24만명)에 비해 3.5배 늘었다. 이주현 건국대 식량자원과학과 교수는 “국내에 동남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인디카를 취급하는 유통망이 커졌다”며 “고품질 인디카 벼를 생산한다면 국내외 쌀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윤주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연구원은 “글로벌시장 진출을 위해 3년 전부터 인디카 쌀 관련 연구·개발(R&D)을 내부적으로 추진 중인데, 이번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인디카 쌀의 국산화가 탄력받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출용 가공식품에 활용하려면 해외 소비자에게 익숙한 향과 길쭉한 형태의 쌀 품종이 필요하고, 수출 대상국 기준에 부합하는 잔류농약 기준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수민 식량원 경지이용작물과 농업연구사는 “기존 인디카 벼를 한국에서 재배하면 10a당 300㎏을 수확할 수 있다”며 “이는 자포니카(500∼550㎏)에 크게 못 미치는 만큼 한국 기후·지형에 적합한 인디카 품종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밀양=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