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오는 10월 23일부터 나주에서 열리는 ‘2025 국제농업박람회’에서 전라남도농업기술원은 아열대채소 전시관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전시관은 단순한 품종 홍보 차원을 넘어, 기후변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서 농업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도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아열대성 작물의 재배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생소했던 오크라, 공심채, 여주, 수세미, 모링가, 차요테 같은 작물들이 이제는 일부 지역 농가의 시설에서 시범 재배되거나 상업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들 채소는 분명 기후변화에 적응력이 높고 기능성도 뛰어나지만, 국내 소비자에게 여전히 ‘낯선 음식’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열대채소의 국내 유입은 단지 기후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동남아 출신의 결혼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의해 소비 수요가 먼저 발생했다. 즉, 이주민의 식문화가 소비의 문을 열었고,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 시설하우스 등에서 재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농업이 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수세미나 여주처럼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지에서는 일상적인 채소로 소비되던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약재 취급을 받거나 식용으로 보급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익숙함’이란 단지 이름이나 생김새가 낯선 수준을 넘는다. 조리법, 맛의 구조, 함께 먹는 음식의 맥락까지 아울러 ‘식문화’로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의 총합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열대채소를 단순히 ‘소득작목’으로 키우려면, 먼저 이 채소들이 어떻게 요리되고, 어떤 효능이 있으며, 왜 먹는지를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식물 도입에 앞서 식문화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주를 사용하는 오키나와식 ‘고야참푸루’나 바지락 수세미국, 공심채 볶음과 같은 요리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농업 관련 기관, 학교, 요리강습소 등에서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비건 요리, 건강식 트렌드가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이색 채소의 수요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도 마련되어가고 있다. 또한 이주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들 채소의 활용법을 확산시키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수요층일 뿐 아니라, 식문화의 살아 있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협력해 조리법을 발굴하고 보급한다면, 아열대채소는 ‘기후변화 대응 작물’이라는 농업적 의미를 넘어, ‘다문화 식생활’이라는 사회문화적 자원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단순히 채소 몇 가지를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농업의 기후 적응력을 넘어, 새로운 식문화를 열어가는 시도여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장, 그리고 지금부터 어떤 문화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전환의 기회다. 우리 식탁의 다양성과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제는 ‘재배’못지않게‘먹는 법’을 먼저 고민하고 보급할 때다. 아열대채소는 아직 낯설지만, 재배는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생산물은 식문화를 풍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