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21일 고물가 대응 및 경제 회복을 위해 21조3000억엔(약 200조원) 규모의 경제 대책을 확정했다. 소비 쿠폰과 자녀 양육 가구 지원 등 ‘현금성 지급’을 전면에 내세운 가운데 전기·가스 보조금은 논의 막판에 대폭 늘어났고, 휘발유 보조금은 감세로 영구화했다.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임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종합 경제대책을 확정지었다. 물가 상승 대응 등을 중심으로 2025 회계연도 일반회계 세출 예산은 전년도 13조9000억엔을 크게 상회하는 17조7000억엔으로 편성했다. 재무성이 당초 제시한 14조엔 안에서 증액된 수치다. 여기에 대규모 감세효과를 합친 규모는 21조3000억엔으로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 회계연도(73조엔) 이후 최대 규모다.
유형별로 보면 생활 안전 보장·물가 상승 대책 8조9000억엔, 위기관리 투자·성장 투자 6조4000억엔, 방위력·외교력 강화 1조7000억엔 등이다.
물가 상승 대책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지방교부금을 2조엔으로 확충했다. 식료품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4000억엔을 투입해 쌀 상품권 등으로 1인당 3000엔 정도를 지원하게 된다.
양육 가정을 위해 4000억엔을 들여 어린이 1인당 2만엔을 지급할 예정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자녀양육 가구 지원 확대는 각의 결정 이틀 전에야 확정됐다. 18세 이하 자녀에게 1인당 2만엔을 소득 제한 없이 일률 지급한다. 또 5000억엔을 들여 내년 1∼3월 가구당 약 7000엔의 전기·가스 요금도 지원할 방침이다. 전기·가스 요금 지원은 2025년 7~9월 월평균 1000엔(3개월간 약 3000엔)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이들 정책은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 후 철회했던 현금 지급이 사실상 부활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재무성의 한 간부는 “지원 대상을 좁히려 한 흔적은 없다”며 “날이 갈수록 일률 지급을 지향하는 흐름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경제 대책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취임 이후 처음 내놓은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경제 성장과 건전 재정에 신경을 쓰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세출 팽창에 따른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위기 대응용 지원책이 평시에도 계속되는 모양새가 되면서 재정 확대에 대한 시장의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 채권시장에서는 채권 추가 발행 가능성이 커지면서 장기물을 중심으로 국채 수익률이 급등했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사무차관 회의에서 관방부장관이 각 부처에 추경 예산 요구액을 더 늘리라고 독려했다”며 “그 과정에서 총리 측근들이 재무성이 승인하지 않은 항목을 각 부처에 직접 청취하고 다니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 추경 예산의 일반회계 세출은 리먼 쇼크 이후인 2009 회계연도 14조엔, 동일본대지진 이후인 2011 회계연도 15조엔, 코로나 19 사태인 2020 회계연도 73조엔 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매번 10조엔이 넘는 거액 편성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각의 결정 후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충분히 배려해서 만들었다”며 “강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전략적인 재정투입을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경제 대책인 실질 국내총생산(GDP)를 24조엔 정도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물가 상승률은 휘발유 감세로 연 0.3%포인트, 전기·가스 보조로 월평균 0.4%포인트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