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누구를 위해 '지스타'는 열리는가

2025-11-17

한국 게임산업 최대 행사인 지스타가 올해도 부산에서 열렸다. 화려한 조명과 인파가 몰렸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과연 지스타는 누구를 위한 전시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산발적으로 열리던 중소 게임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문체부·정통부가 총 40억원을 출연해 사단법인 지스타조직위원회를 설립하고, 산업자원부(KOTRA)가 해외 바이어 유치에 나섰던 '(게임유관 기관) 다부처 통합전시회'가 지스타의 시작이었다. 출범 당시 지스타는 정부·산업·연구계가 협력해 만든 명실상부한 국가 전시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오늘, 지스타의 모습은 출범 취지와 멀어졌다는 비판이 많다. 지스타는 형식적으로는 '국제 게임쇼'를 표방하지만 정작 해외 기업들은 대거 이탈했고 국내 메이저사들조차 참가 규모를 줄이거나 출품을 포기했다. 엔씨소프트·넷마블·크래프톤 정도만 체면치레 수준의 부스를 채우는 상황에서 지스타가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라는 기대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상처와 목적을 안고 전장에 모여든다. 오늘의 지스타 역시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간을 닮았다.

이제 지스타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 홍보의 장' 한 가지 기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스타의 종이 울려야 할 대상은 다음과 같다. ①게이머(이용자)에게: 새로운 한국 게임의 가능성과 게임문화축제를 ②개발자에게:실험과 교류를 위한 열린 무대를 ③경영진에게:글로벌 시장을 향한 전략적 방향성을 ④연구자에게:산업·문화·기술을 잇는 지식 플랫폼을 말이다.

스페인 내전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오늘의 한국 게임산업 역시 다음과 같은 충돌 한가운데 있다. 확률형 중심 vs 창의 중심, 국내 중심 vs 글로벌 전략, 단기 매출 vs 장기 IP 투자, 산업 vs 문화 등 지스타는 이 충돌을 압축해 보여주는 '전장'이다. 그러나 그 전장이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저 이해관계의 충돌만 증폭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지스타의 근본적 문제는 '정체성의 모호함'이다. 국제 전시를 표방하지만 부산 개최는 해외 기업과 직원들 입장에서 이동부담이 크다. 국내선 환승이 필수인 구조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지스타를 주요 스케줄로 선택하기 망설여진다(아시아 바이어는 예외). 반면에 '국내 게이머 페스티벌'로 특화 시키기에는 프로그램 기획력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콘솔 중심의 글로벌 게임쇼(게임스컴·TGS)와 달리, 한국은 모바일·온라인 중심이라 해외 메이저 콘솔 메이커들이 올 이유도 충분치 않다.

지스타가 다시 살아날 길은 명확하다. 첫째, 전시포맷을 단순한 기업 쇼케이스에서 '혁신적인 게임문화 축제'로 전환해야 한다. 게임스컴, TGS, PAX의 꼼꼼한 벤치마킹을 넘어 성공적인 지역 연계 문화 축제의 장점을 유연하게 채택해야 한다. 둘째, 게이머·인디창작·연구자·정책·e스포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정책·학술이 함께 모여야 전시회가 미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글로벌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수도권 개최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판교·구로가산디지털단지·킨텍스 등 산업 밀집 지역과의 연계는 더 강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지스타는 한국 게임산업을 상징하는 무대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해관계의 충돌만 남는다면 '종(지스타)'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지스타가 이 모두를 위한 공적 전시로 진화할 때, 한국 게임산업의 다음 10년을 여는 '골든벨'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 하나다. “지스타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지스타는 산업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답을 찾아갈 때, 지스타는 단순한 '게임쇼'를 넘어 한국 게임산업의 전략적 심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김정태 동양대 동두천캠퍼스 SW융합대학 교수 game365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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