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숫자는 어떻게 예술이 되었나? 미야지마 다쓰오가 말하는 '우주'와 '생명'

2025-05-27

전시장 안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거울 표면에 색색으로 깜빡이는 디지털 LED(발광 다이오드) 숫자만 보인다. LED 빛으로 나타난 숫자는 시시각각 다른 색, 다른 숫자로 바뀌고, 어느 순간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잠시 꺼지기도 한다. 그렇게 빛을 발하는 색색의 숫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깜빡이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디지털 시계가 아니다. 일본 출신의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다쓰오(68)의 설치 작품이다. 점멸하는 숫자 LED에 우주와 생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 표현해온 다쓰오가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6월 28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이 '폴딩 코스모스(Folding Cosmos)', 우리말로 접혀진(겹쳐진) 우주다.

다쓰오는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미술관 입구 바닥에 설치된 LED 숫자 설치작업 '경계를 넘어서'를 통해 이미 많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친숙해진 예술가다. 변화하는 디지털 숫자 배열은, 그가 사람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시각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중요한 재료다.

작품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그리고 '영원히 계속된다'는 내용의 세 가지 핵심 개념이 깔렸다. 22일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두고 21일 전시장에서 기자들을 만난 다쓰오는 "점멸하는 색색의 숫자는 내게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각 개체이고, 이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빛이 잠시 멈춰 보인다고 해도 그게 끝은 아니다. 숫자는 다시 시작된다. 그 안에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했다.

세계는 겹쳐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거울 소재에 LED 숫자를 결합한 신작 시리즈를 선보이며 우주와 시간, 그리고 생명이 서로 얽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신작 'C.T.C.S. 킨' 시리즈는 고대 마야문명의 최소 시간 단위인 '킨'(K'in)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 동그란 거울 표면 위에 1부터 9까지 LED 숫자들이 카운트 다운하며 점멸한다. 마야문명의 셈법인 20진법을 이용해 숫자를 배열하고, 각 색도 마야에서 기본으로 쓰였던 빨강과 노랑, 흰색, 초록, 파랑 등 오색을 사용했다. 그는 "숫자가 배열된 거울엔 전시장의 공간과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얼굴이 비친다. 마야문영의 시간과 우리의 현대 시간이 다양한 리듬 속에서 하나로 융합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전했다.

원통형 LED를 이용한 또 다른 신작 '삶의 100가지 변화'(Hundred Changes in Life)도 눈길을 끈다. 킨 시리즈에서 숫자가 카운트 다운했다면, 이 시리즈에선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무작위로 바뀐다. 그런데 그 안에 '0'이란 숫자는 없다. 이에 관해 묻자 그는 "0은 불이 꺼져 있는 상태. 즉 '블랙 아웃'된 순간"이라며 "0은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보여줄 뿐 완전한 무(無)의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생명의 순환'에 대한 그의 동양 사상적 관점이 읽히는 대목이다. 그는 "명멸이 지속하는 상황이 바로 살아 있음, 즉 생명을 의미한다"며 "생명이라는 개념은 죽음과 삶 모두를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삶의 백 가지 변화'에선 불이 꺼진 상태까지 포함해 총 10개의 숫자와 10개의 색이 무작위로 조합되며 100개의 다른 상태가 만들어진다. '백 가지 변화'는 '십인십색(十人十色)'이 아니라 '백인백색(百人百色 )의 의미로 저마다 다른 인간의 감정과 상태를 뜻한다. 그는 "각기 다른 인간이 모여 사회가 이뤄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거울은 상징성이 크다. 관람객은 작품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두 개의 다른 우주가 만나는" 것을 은유한다. 다쓰오는 "세계는 단일하지 않다. 다양한 것이 모두 겹쳐져 구성된다"고 말했다.

LED 숫자와 '시간'의 개념

그는 어떻게 1980년대 말부터 LED 숫자를 작업 재료로 쓰게 됐을까. "세대를 초월해 변치 않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는 그는 "디지털 시대의 상징인 LED 숫자는 '시간'의 개념을 드러내며, 그것과 연결된 우주의 각 개체를 시각화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몇 년 전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으며 그의 사유는 더 확장됐다. 그는 개별 숫자가 아니라 군집을 이뤄 작동하는 원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양자역학'의 원리에 더욱 매료됐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 원리', 하나의 양자 시스템이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중첩'의 개념 등이 그것이다.

다쓰오는 "일부 카운트다운 되는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의 숫자 변화 속도와 색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달라진다"며 "예측 불가능한 것이야 말로 세상 변화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어 "1988년에 데뷔했을 때 LED 색은 빨간색과 초록색밖에 없었고 빛도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색도 다양해지고 더욱 밝아졌다"며 "우리는 모든 것을 과학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세계가 복잡할수록 예축도, 통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존재는 작품을 보는 사람"이라며 "작품은 하나의 각기 다른 관객에 의해 무한하게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관객은 작품의 중요한 일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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