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시간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쩌렁쩌렁한 고함이 귀를 때렸다. 마른 체격의 중년 남성이 건장한 청년을 향해 삿대질하며 거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귀 기울여 보니 사소한 발 접촉에서 비롯된 시비다. 주변엔 청년의 친구 서너 명이 남성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상황. 다행히 청년은 말대꾸 없이 묵묵히 폭언을 견뎠다. 보다 못한 주변 승객들이 개입하려던 찰나 중년 남성은 마지막 욕설을 크게 내뱉고는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사소한 접촉이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한쪽은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폭발했고 다른 한쪽은 차분히 인내하며 상황을 넘겼다. 이 차이를 설명하려면 우리 뇌, 그중에서도 전두엽과 변연계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정 균형추, 전전두엽·변연계
취약해진 전전두엽 버럭 유발
비슷한 유튜브만 보면 더 위험

전두엽은 이마 아래에 있는 뇌의 일부로 사람은 특히 앞쪽 전전두엽(전전두피질)이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 이성적 사고, 감정 조절, 자기 통제, 사회관계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뇌 속 ‘컨트롤 타워’다.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 생존 본능에 관여하는 뇌의 안쪽 부위다. 기쁨·슬픔·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관여한다. 흔히 ‘감정의 뇌’라고 불린다.
동물은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위협을 느끼면 바로 공격하거나 도망친다. 변연계가 반응해 감정이 곧장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맞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전전두엽이 변연계를 통제해 주는 덕분이다.
감정 조절 실패로 인한 사건이 연일 뉴스를 채운다. 부부 갈등, 연인의 변심에서 비롯된 폭력과 자살 등 극단적 행동도 늘고 있다. 전전두엽은 이런 분노 조절 장애와 우울증에 깊이 관여한다. 제 기능만 다 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 비극도 적지 않다. 실제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다수에게서 전전두엽 기능 저하가 관찰된다.
이야기 속 청년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고 당장에라도 폭발할 기세였다. 다행히 전전두엽이 적시에 작동해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으로 대응했다. 반면 중년 남성은 제어 기능을 잃은 듯 감정이 곧장 행동으로 폭발했고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다.
전전두엽은 25세쯤 되어야 성숙한다. 반면에 변연계는 10대 초·중반이면 이미 발달을 마친다. 이 차이 때문에 청소년은 감정이 쉽게 폭발하고 조절 능력은 미숙하다. 분노나 충동, 불안, 우울 등에 쉽게 휘둘리며 통제력을 잃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전전두엽은 노화에 취약하지만, 변연계는 그 영향을 덜 받는다. 이에 따라 나이가 들면 아직 감정은 생생하지만, 조절 능력은 약해진다. 결국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판단력과 공감 능력도 함께 무뎌진다.
전전두엽은 생활 습관에 민감하다. 과음, 흡연, 수면 장애, 운동 부족, 영양 불균형은 모두 중요한 위험 인자다. 여기에 사회 고립도 큰 영향을 미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주변과의 단절은 전전두엽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인으로부터 “너 성격 변했어. 왜 이리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라는 소리를 들으면 한 번쯤은 전전두엽 변화를 의심해 보자. 이를 개선하려면 두뇌 자극도 필요하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활동은 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독서, 글쓰기, 외국어 공부, 악기 연주처럼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면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되어 큰 효과를 낸다.
주의할 점도 있다. 책을 읽든, 유튜브를 시청하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새로운 자극이 아니라 기존 사고만 더 굳어진다. 물이 고이면 썩고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공기가 탁해지듯 사고도 정체되면 활력을 잃는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낯선 정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전전두엽이 둔해질 수 있다. 생각과 판단을 맡기다 보면 뇌의 자율성과 조절력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 청소년은 발달 지연 위험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핵심은 기술을 얼마나 주체적이고 균형 있게 활용하느냐다. 사고의 주도권을 지킬 때 전두엽은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치매가 더 무서우냐, 아니면 전전두엽 기능 저하가 더 두려우냐?”라고 묻는다면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버럭버럭하는 나를 발견한 탓이다. 요즘 묵혀두었던 펜을 꺼내 매일 종이에 생각을 써보고 다양한 책도 읽으며 스스로 꾸준히 자극하려 노력하고 있다. 전전두엽을 지키는 건 약도, 건강기능식품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