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막말에 대한 명상

2025-06-25

‘막말’이란 말의 의미 정체(正體)는 무엇일까. ‘막­’이란 접두어는 ‘함부로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막가파’, ‘막가자는 거냐?’, ‘막되어 먹은 놈’ 등의 ‘막­’이 바로 그것이다. ‘막­’에는 ‘거칠다’라는 뜻도 있다. 막걸리는 ‘막’(거칠게)과 ‘거르다’가 합성된 말로, ‘거칠게 걸러낸 술’이라는 뜻이다. 막말은 함부로 거칠게 해 대는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또 ‘막­’은 ‘밑바닥’, ‘낮은’ 등의 뜻도 있다. ‘막장 인생’이 ‘밑바닥 인생’으로, ‘막노동’이 ‘별다른 기술 없이 몸으로 감당하는 밑바닥 등급의 노동’으로 통하는 데서, ‘막도장’이란 말이 ‘임시변통의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만든 값싼 도장’이었던 데서, 막말의 숨은 의미소를 볼 수 있다. 막말은 말의 품격으로서는 밑바닥 수준의 말이다. 나쁜 말, 맞다.

‘막­’은 ‘끝’, ‘마지막’ 등의 뜻도 있다. ‘막차’란 말이 ‘마지막 차’를 일컫는 데서, ‘막내’가 ‘맨끝의 자식’을 뜻하는 데서, ‘막판’이 ‘마지막 판’임을 나타내는 데서, ‘막다른 길’이 ‘길이 끝나는 곳’임을 뜻하는 데서 ‘막­’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막­’에는 심리적으로 ‘마지막 의식’이 숨어 있다. ‘마지막 의식’이란 무엇이겠는가. 역사와 인간에 대한 특별한 성찰이 있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의식이 비장한 가치로 승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의식, 즉 허무나 퇴폐의 감정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막말은 심리적으로 마지막의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까짓것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내지르는 말이다. 마지막이니, 지금 이후라는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럴 때의 막말이란 어떤 극언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허무와 분노와 좌절감이 막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생테도 엄연히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별생각 없이 막말 쓰는 습관을 쌓아 나가다 보면, 나의 심리적 지향에 허무와 분노, 불만과 좌절, 원망과 저주 등의 악령이 들어어 살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급전직하(急轉直下) 추락하여 신음하고 있는 나의 불쌍한 자존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점이야말로 우리의 가정·사회 교육이 유념해야 하는 대목이다. 언어에는 마성(魔性)이 있다. 언어는 자신을 사용하는 주체(인간)의 의식을 잠식하듯 지배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막말은 이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막말을 듣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화적 양심으로 거르지 않고 내지르는, 감정의 해방구가 된 SNS 공간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SNS의 생태가 나의 일상 언어 영역으로 세차게 들어왔다. 아니, 그런 SNS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태를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막말이 일상적 언어생태가 되어 버렸다. SNS 생태에서의 막말 현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언어문화로 옮겨 오게 마련이다.

자기 욕망의 좌절을 남 탓으로 몰아가려는 심리가 막말을 전방위로 투사한다. 어떤 SNS에서 내 나름대로 합리적인 답글을 올려놓았는데, 누군가 무작정 나를 망가뜨리는 막말 댓글로 자기감정을 배설한다. 나는 내 답글을 조용히 내린다. 세상은 막말을 그냥 자극적으로 소비하며 즐기는 듯하다. 자극성 강한, 돌직구 막말들에 감정적 후련함을 따라가는 사이, 그 후련함의 몇 배쯤 되는 해독을 너나없이 모두 나누어 가지고 사는 세상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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