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상, 편운문학상 수상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좀체 보기 힘든 함박눈 내리고/ 골목엔 조금 일찍 가로등 불이 켜졌다.// 고지서가 손님처럼 기다리는/ 문 앞에 서서/ 까만 봉지를 내려놓고 그는/ 집요하게 쏟아져 내리는/ 눈을 올려다본다.// 먼 나라를 그리워만 했던/ 그는 겨울사람이었다.// 혼자 맥주를 마시며 오늘도/ 밤을 보낼 것이다./ 침침한 눈으로 고지서를/ 보다 중얼거리다/ 졸 것이다.//봄은 한 번도/ 그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 '겨울의 집' 전문.

여태천의 시집 '집 없는 집'에서의 '집'은 개인의 편안한 휴식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태어나고 자라는 장소이자 훗날 죽어 묻힐 묘지, 참회하며 기도하는 교회이자 언젠가 도달한 저승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동안 결코 떨칠 수 없는 '몸'이자 '이름'이다. 즉 한 사람이 사는 동안 주체로서 존재하고자 분투하는 모든 시공간, 그러나 결코 그 한 사람이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는 무한한 시공간이다.
무수한 '집'들을 시인은 '친구'와 오래오래 걷는다. 여러 모양의 '집'들을 하나하나 거치며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순간들을 생각하는 이 여정은 마치 꿈길 같다. 그러나 그 여정은 곧 꿈 밖으로 내쳐진다. 우리가 사는 집, 병원, 교회, 횡단보도, 꽉 막힌 고속도로, 오래된 골목 한가운데로 떠돈다, '집 없는 집'의 1부는 '집'에 대한 꿈같은 형상들로 가득하다. 1부에 모인 시의 제목인 '생각의 집', '별들의 집', '겨울의 집', '시간의 집', '늙은 천사의 집', '불빛 환한 집', '희망의 집' 등이 보여 주듯 '집'은 구체적인 삶의 면면보다 희미하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제시된다.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죽듯이/ 생각 때문에 죽기도 하겠구나.' -'묘비명'에서.
'혼자 남은 식탁에서 식어 가는 음식을/ 누군가를 기다리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살아 있는 것들이 죽어 가도 모를 시간이다.' -'밥을 먹다 말고'에서.
이러한 생각들의 끝에는 16편의 '포비아' 연작 시가 고해성사처럼 이어진다. '아침'에 깨어나 '저녁'에 잠들 때까지, '일인용'의 고독을 느낄 때도, '가족'과 '이웃'에게 부대낄 때도, '있음'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진심'에도 불안을 느낀다는 것에, 그 무엇으로도 불안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며. 시인은 쓴다, 시간의 잔해 같은 '기억 곳곳의 어둠'을 들여다보며.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두려움보다 무섭게 쓴다. 무섭게 쓰는 동안 시인은 "무서움"이 된다. 기억 곳곳의 어둠마저 품는 거대한 '집'이 된다.
여태천은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해 시집 '스윙'으로 2008년 김수영 문학상을,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로 2021년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집 없는 집'은 다섯 번째 시집이다. 한국 시단에 '이방인'의 등장을 알린 첫 시집 '국외자들'부터 삶의 허무를 야구라는 대중적 스포츠로 들여다본 '스윙'을 지나 일상적인 슬픔을 통해, 슬픔 안에서 삶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구한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에 이르기까지. 여태천의 시는 먼 곳에서 시작해 점차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민음사. 값 1만 3천원.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