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우리 과학기술로 쏜 누리호…'우주 자립' 희망 쐈다 [창간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 ㊺]

2025-10-29

트리거 ㊺ 누리호, 날아오르다

눈앞에 환상적인 자태를 드러내는 곳, 그러나 결코 닿을 수 없었던 곳, 그래서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곳.

바로 우주다. 인류 문명의 상당 기간 우주는 신화의 무대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자리의 전설이 생겼고, 태양계의 행성에는 올림포스 신들의 이름이 붙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우주는 신들의 세계에서 물질의 세계로 내려왔다. 과학은 천체가 움직이는 원칙을 찾아냈다. 20세기 전반에는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빅뱅(Big Bang·대폭발)’ 이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우주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곳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주에 인간의 손길이 닿기 시작한 것, 다시 말해 우주 개발의 계기는 체제 경쟁이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은 미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탄 개발에 착수했다. 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야(대기권 재진입) 했으나 번번이 재진입에 실패했다. 자칫 탄도탄 개발이 무산될 상황에서 개발을 이끌었던 과학자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아이디어를 냈다. ‘재진입하지 않고도 수행할 군사적 용도를 찾으면 되지 않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미국엔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우주 공간에서 적대국이 미국을 낱낱이 살피는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었다. 체제의 우월성에도 금이 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69년 7월 20일, 마침내 인류는 달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미국 정찰위성, 북한 노동미사일 탐지

한국의 우주개발 역시 체제 경쟁이 불을 붙였다. 89년 12월, 이라크가 소련제 스커드미사일 기술을 기반으로 위성 발사를 시도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냥 넘길 뉴스가 아니었다. 북한도 똑같은 시도를 할 수 있어서였다. 이듬해 5월에는 북한을 훑던 미국의 정찰위성이 스커드를 개량한 노동미사일을 발견했다.

우리나라도 그때 본격적으로 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 소식이 들어왔을 당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가 문을 연 지 갓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필자는 우주추진기관연구실장을 맡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로켓 개발 책임자였다. 하지만 ‘언젠가 로켓을 만들리라’는 꿈을 갖고 각종 조사연구만 했을 뿐, 예산이 없어 실제 로켓 제작은 손도 대지 못했다. 당시 항우연의 우주 관련 주 임무는 남의 나라 로켓에 실어올릴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인공위성은 선진 기술을 이전받거나 부품을 수입하기 쉬웠으나, 군사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로켓은 그렇지 않아 개발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92년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유럽의 로켓으로 쏘아올리는 등 인공위성 개발이 발사체(로켓)보다 앞섰던 이유다. 물론 우리도 군사무기로서의 로켓 기술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정학적 이슈 때문에 사거리가 180㎞ 이내로 제한돼 위성 발사 등에는 응용할 수 없었다.

그러던 발사체 개발은 노동미사일 발견 직후 탄력이 붙었다. 곧바로 과학 로켓 개발이 시작됐다. 3년여 연구개발 끝에 93년 6월, 최초의 과학로켓 KSR-Ⅰ이 날아올랐다. 고체 연료를 쓰는 1단 로켓이었다. 199초 동안 77㎞를 날았다.

더 무거운 짐을 싣고 더 높이 날 수 있는 첫 액체연료 과학로켓 KSR-Ⅲ 개발이 이어졌다. 98년부터 5년간 580억원을 들여 개발하려 했다. 그때 외환위기가 터졌다. 개발 첫해인 98년 예산이 2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98년 9월 1일, 도처에서 항우연으로 급한 연락이 쏟아졌다. 데이터를 주며 분석해 달라고 했다. 북한이 전날 발사한 대포동 1호의 궤적이었다. 북한은 대포동 1호에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실어 궤도에 올렸다고 주장했다. 분석을 거듭해 ‘인공위성 발사 시도는 맞는 것 같으나 궤도 진입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KSR-Ⅲ 연구가 본격화됐다. 전체 연구비는 780억원, 98년도 연구비는 10배 가까운 198억원으로 늘었다. 국제사회를 설득해 평화적 목적의 로켓에 대해서는 사거리 제한도 풀었다.

2002년 11월 KSR-Ⅲ가, 2013년 1월엔 러시아와 기술 협력한 나로호가, 그리고 2022년 6월엔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누리호가 날아올랐다. 누리호는 과학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다. 드디어 독자적인 우주 수송체계를 확보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인도·프랑스와 더불어 무게 1t 이상의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세계 7대 국가 반열에 섰다. 그 사이에 2009년 나로우주센터가 문을 열었다.

누리호 개발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30만 개의 부품과 소재들이 극심한 온도와 압력의 변화를 견뎌야 했다. 상온에서 멀쩡하게 작동하던 전자기기도 이런 극한 환경에선 이상을 일으키기 일쑤다. 로켓 점화 직후의 엄청난 진동 때문에 연결 부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지상시험을 아무리 해도 실제 발사를 하지 않고는 찾아내기 몹시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다못해 발사체 겉에 그리는 태극기와 ‘대한민국’ 글자에도 특수 페인트를 써야 한다. 보통 페인트는 극저온을 버티지 못한다. 온 국민이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와중에 ‘대한민국’ 글자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래저래 로켓 개발은 난관의 연속이다. 나로호와 누리호는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성원과 격려를 보내 준 국민 덕에 성공했다. 물론 실패는 연구개발진에게 정말 피 말리는 순간이었다.

달에 무궁무진한 우라늄과 헬륨3

누리호 개발에는 약 2조원이 들었다.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라 ‘굳이 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왜 우주개발 경쟁을 할까.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같은 민간기업은 왜 우주개발에 뛰어들었을까. 그런 민간 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들은 벌써 ‘우주 자원개발’ 같은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고 있다. 지구에는 드문 ‘헬륨3’가 달에는 무궁무진하다. 헬륨3은 미래 청정에너지인 핵융합 발전의 원료다. 우라늄도 있다. 소행성에는 귀금속과 희토류 금속이 상당량 묻혀 있다고 한다.

우주 자원개발은 이렇게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지만, 투입해야 할 돈도 엄청나다. 초강대국이라도 혼자 하기엔 버겁다. 그래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나라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해 우주 자원을 캐 오고, 각자 지분만큼 우주 자원을 나눠 가지는 방식이 유력하다. 지금의 우주개발 투자는 미래 ‘우주 자원개발 리그’ 구성원이 되기 위한 선제 투자인 셈이다.

2007~2008년 최초의 우주인을 뽑아 9박10일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낸 일을 놓고 ‘쇼’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개인의 선택(당시 최초의 우주인은 미국 영주권을 얻었다)으로 우주 체류 경험이 국가 자산이 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미래 우주개발을 위해 우주인 육성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폴로 11호와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이 과학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실제로 훗날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 최초 우주인 역시 같은 꿈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었을 터다. 결국 우주 개발은 미래 물적·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투자라 하겠다.

우리의 우주개발은 달 탐사나 자원개발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뿐 아니라 실용적인 목표 역시 가져야 한다. ‘산불 조기탐지 위성’을 발사해 24시간 전국을 감시하고 산불을 초기에 발견, 진화함으로써 연간 1조원이 넘는 산불 피해를 줄이는 것 등이다. 인공위성의 핵심 부품을 국산화하고, 한국형 발사체 성능을 계속 개선하며, 참여 산업체의 경쟁력을 높여 미래에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처럼 재사용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KIST와 과학 입국’ 편입니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