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는 역사에서 미래를 못 읽는다

2025-10-28

정화(鄭和)는 1405년 중국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의 명을 받고 인도양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항해보다 무려 90년 가까이 빠른 해양진출이었다. 첫 항해에서 인도와 베트남까지 진출했고, 이어진 30년여 항해로 1433년 7차 원정에서는 아프리카 동부 해안 케냐와 모잠비크까지 진출했다.

정화의 함대는 콜럼버스의 함대보다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다. 137m 길이에 56m 폭을 가진 8000톤급 함선을 비롯해 총 62척에 승선원 2만7000명을 태우고 항해했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250톤 규모의 배 3척을 갖고 88명의 승선원으로 항해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유럽보다 빨랐던 중국의 해양 진출

해양문명 포기 후 대륙세력 길 택해

내부에 갇히며 명·청 중화제국 침몰

여야는 미래 설계로 정책 경쟁해야

중국은 세계 문명 3대 기술인 종이, 나침반, 화약의 발명 원조였다. 기원후 100년경 종이를 발명하여 지식의 확산에 기여했고, 11세기 자석을 이용하여 방향을 측정하는 나침반을 발명하여 항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9세기 연금술의 발전으로 화약을 발명하여 전쟁에 활용했다. 이런 기술 발전의 축적으로 명·청시대 중국은 세계 GDP의 30%를 차지했고, 인구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의 제국이 되었다. 그런 중국의 몰락은 해양무역과 기술혁신을 억제한 국내 정치의 편협한 정책 결정의 산물이다.

이어령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필자와의 대담에서 세계사의 큰 흐름을 이야기하면서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을 구분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중국은 영락제 이후 해양 진출이 정부지출의 과도한 낭비이고, 북방 오랑캐와 국내 정치세력을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정화의 항해 자료를 모두 불태우고 더 이상 해양 진출을 금지했다. 그 대신 영락제는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이전한 후 항주에서 북경까지 내륙에 대운하 건설공사를 단행하고, 국내 정치에 치중하며 대륙 세력의 길을 택했다. 조영헌 교수의 명저 『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진출을 ‘주저’했는가?』는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해양을 먼저 개척했던 중국이 바다를 봉쇄하고 국내 정치 중심의 쇄국 정책을 편 결과는 참담했다. 정치지도자들은 국내정치에 매몰되어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변화와 미래를 읽지 못했다. 미래를 읽지 못한 중국은 청나라 말기 대표적 해양세력인 영국에 아편전쟁으로, 일본에 청일전쟁으로 참패하면서 대륙세력 중화제국은 침몰했다.

이제 중국이 일대일로를 앞세워 대륙세력에서 해양세력으로 탈바꿈하려 한다. 남중국해에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자체 설계로 산둥함 등 항공모함 건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프리카 원조와 중동국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남태평양, 인도양, 아프리카 등지에 군사기지 및 항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시진핑은 해양 풍력에너지, 해운 항만, 해양자원 개발 등을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삼고자 한다. 딥시크에서 보듯 AI나 로봇 등 첨단기술도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또 다른 대륙세력 러시아도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미래전략에 여념이 없다. 푸틴은 매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한다. 푸틴은 이 포럼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태평양 진출과 북극항로 개척에 심혈을 기울인다. 기후 온난화로 북극해가 해빙되어 북극항로가 열리면 유럽 로테르담에서 아시아까지 해상 항로 2만2000㎞가 1만2000㎞까지 단축될 수 있다. 소말리아 해적 위협을 피하고 운송 기간과 에너지가 크게 절감되는 북극항로 개척은 21세기 러시아에는 시베리아 자원개발과 함께 미래의 핵심자원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푸틴은 시베리아 일대에 항구도시 건설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권위주의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으로 탈바꿈하며 힘을 키우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가 쇠퇴하고 AI 문명이 등장하며 대변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국내 정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극렬하게 투쟁하는 20세기 구태가 심화되고 있다. 지금 진보세력은 20세기 사회이념과 집단이익만을 지키기 위한 수구세력으로 전락했다. 진보세력이라고 하면 미래를 읽고 미래를 준비하며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21세기 AI 문명과 지정학적 변화를 읽고 새로운 이념과 사회 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하는 진정한 진보세력이 우리 정치에는 없다.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에 함몰되어 문명사와 지정학적 변화의 거대한 파고를 읽지 못하고 시스템 대변혁을 추진하지 못하면 우리는 코리아 피크에서 빠르게 추락할 것이다. 국내정치의 얄팍한 프로파간다만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극단 지지자들의 입맛만 맞추는 데 몰두할 때 그들은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제 국내정치 정쟁은 그만두고 미래 한국을 위한 사회시스템 설계 경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길 바란다. 정치지도자들이 명·청 화려했던 중화제국 몰락의 원인을 뼛속 깊이 새기면 좋겠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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