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법, 대선 정국서 ‘정쟁 불쏘시개’ 될라… “법 개정에 도움 안 돼” [대선 이슈 톺아보기]

2025-05-21

6·3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 대선 주자들이 간첩법 개정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이 법의 내용은 무엇이고, 왜 개정돼야 하는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22대 국회 들어 활발했던 국회의 간첩법 개정 논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사유 중 하나로 ‘더불어민주당의 간첩법 개정 반대’를 주장한 탓에 간첩법 개정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평가도 있다.

21일 안보 분야 인사들은 대선 정국 이후 법 개정 논의가 지연된 데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식의 공방이 벌어질 것을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정파 구분이 없어야 할 국가안보 사안이 자칫 정쟁의 불씨를 키우는 불쏘시개 정도로 활용되면 결과적으로 간첩법 개정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왜 개정해야 하나?

간첩법은 형법 98조 간첩죄 조항을 말한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의 ‘적국’은 정전협정을 맺은 북한뿐이다. 즉 현행법은 우리의 국가기밀을 빼돌리는 간첩을 적발해도 북한을 위한 행위만 아니면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치명적 허점을 갖고 있다.

동시에 우리 법체계상 북한은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취급되는 특수성이 있다. 그런데 북한 간첩을 간첩법으로 처벌할 경우 북한을 적국, 즉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북한을 위한 간첩 행위는 국가보안법을 별도로 만들어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간첩법은 어떤 간첩도 처벌 못 하는 유명무실한 법인 셈이다.

이러한 간첩법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주요국처럼 처벌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해 간첩법을 실질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온 이유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이뤄진 법 개정 시도는 정치 공방 속 뒷전으로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보수 진영 주자들, 대선 공약화

계엄과 윤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주목도가 떨어졌던 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최근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거론되며 수면 위로 오른 모습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간첩법 개정을 안보 공약으로 내걸면서다. 반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관련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간첩법 개정 사안이 윤 전 대통령으로 인해 ‘오염된 이슈’가 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사유 중 하나로 ‘민주당의 간첩법 개정 반대’를 주장해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첩법상 적국을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민주당과 국민의힘 합의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를 통과했다. 간첩법 개정안이 국회 소위를 통과한 헌정사상 첫 사례였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전체회의 통과도 낙관하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 관련 공청회가 선행돼야 한다고 방침을 정함에 따라 전체회의 상정은 불발됐다. 공청회 일정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싸움 소재 활용 안 돼”

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간첩법이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갈등 소재로 활용될 경우 향후의 법 개정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정치권 내에서 더욱 활발한 소통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창준 전 국가정보원 방첩국장은 통화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간첩법이 공방의 대상으로 전용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간첩법 개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유 전 국장은 “간첩법 개정은 특정 당이 주도권을 쥐고 가는 모습보다는 진영을 초월해 함께 협력해 이뤄내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국현 전 방첩국장은 “간첩법 개정은 외국 간첩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국내 정치권 인사들의 정상적인 외교 활동이나 학술 교류 등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국장은 허술한 법체계가 장기간 이어져 온 점을 지적하며 “이제 어느 누구의 책임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권과 법무부 등이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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