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시간 넘게 통화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및 종전을 위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쟁범죄 혐의를 받는 푸틴에 대한 형사처리 문제 또한 향후 협상 과정에서 다뤄질 수 있는데, 이는 ‘공범’으로 지목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책임 규명 향방도 결정할 수 있다.

'전범' 푸틴, 형사책임 논의 부상
트럼프는 19일(현지시간) 푸틴과 통화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즉시 휴전과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같은 날 "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며 온도 차를 보였지만, 2022년 개전 이후 미·러 최고위급이 실질적인 종전 협상의 가능성을 가장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가 자행한 '전쟁 범죄'에 대한 처리 문제도 화두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푸틴에 대해 우크라이나 아동을 납치하는 등 전쟁범죄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외교가에선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북한군 파병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 ICC가 김정은 또한 푸틴과 함께 공범으로 제소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은 19일 '2025 북한인권 국제회의'에서 "(지금이) 김정은을 ICC에 회부할 적기"라고 주장했다. 송 전 소장은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피해국으로서 고소할 수 있는 법적 여건이 마련됐다"며 "ICC 검사가 직권으로 기소 절차를 개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하면 회원국은 해당 인물이 자국 영토에 들어올 경우 이를 체포할 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 이와 관련, 송 전 소장은 "(체포영장 발부 시 김정은은) ICC 회원국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사실상의 제재를 받게 된다"며 "ICC의 체포영장에는 공소시효가 없어 피의자는 평생 국제범죄자라는 낙인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며, 이는 상당한 심리적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북한군 전쟁범죄 회부 가능"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북한을 직접 ICC에 회부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법률분석관은 "북·러의 파병 인정으로 우크라이나가 로마규정 제14조(당사국에 의한 상황의 회부)에 따라 북한군의 전쟁범죄를 ICC 소추부에 회부할 여지가 커졌다"며 "한국도 관련 증거를 수집하고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직접 회부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책임 추궁 가능성 남겨둬야"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에 사용될 무기와 포탄을 공급하고, 1만 5000여 명의 병력을 전장에 파견한 북한을 ‘전범’으로 낙인찍는 것은 전쟁의 준당사국이 된 한국에도 중요하다.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제4조(무력 침공 시 군사적 지원)를 불법적 군사 협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하는 만큼 유사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외교적·법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고존엄인 김정은 개인에게 평생 따라다닐 '주홍 글씨'를 찍는 것은 북한 체제 전체에 대한 상징적 압박이 될 수 있다.
정대진 원주한라대 교수는 “김정은을 전범으로 단죄하긴 쉽지 않지만, 정의 구현을 위한 기록과 국제사회 환기를 위해 면밀한 법적 검토는 필요하다”며 “다만 수많은 사상자를 고려하면 종전은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김정은에 대한 ICC 제소 가능성에 관해 "ICC 관할 범죄에 대한 개인의 형사 책임 문제는 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 규정 상 해당 범죄 구성 요건과 관련 구체적인 사실 관계 등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쟁범죄나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등을 노리고 종전 자체에만 속도를 내면서 푸틴과 김정은에 대한 형사적 책임 규명 절차가 자칫 협상 카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 등이 ICC의 사법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 중인 ‘우크라이나 침략범죄 특별재판소’ 관련 회의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