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개막 앞둔 ‘퀴어 영화제’, 대관 취소 일방 통보···뒤에는 “동성애 반대” 악성 민원

2025-05-02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내에서 운영 중인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가 오는 6월20일 막을 여는 ‘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취소하겠다고 지난 1일 주최 측에 통보했다. 최근 반 성소수자 세력 등이 민원으로 부담을 느낀 극장 측이 대관 취소를 결정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한국퀴어영화제집행위원회는 영화제 개막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라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퀴어영화제 이외에도 외부 압력으로 성소수자와 관련한 행사에 공간 제공을 꺼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화여대를 지키고 사랑하는 이화인 일동’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한국퀴어영화제 개최를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서명을 독려하는 글에서 “한국퀴어영화제는 명백히 이화여자대학교 헌장 제1조 창립 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하기에 이화여대 교육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이화인 동창 여러분 목소리를 내주셔서 어린 학생들의 교육 공간인 이화 땅이 전국의 동성애 홍보장이 되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들은 이화여대 총장실 등에 영화제를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민원 전화 독려도 하고 있다. 아트하우스 모모 관계자는 “최근 이화여대 졸업생인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졸업생이라며 관련해 민원 전화가 많이 왔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주최 측에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퀴어영화제 집행위는 지난해에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제를 열었다. 집행위 측은 “이미 아트하우스 모모 측과 미팅을 마치고 구두 계약까지 마친 상황이었고, 절차가 진행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취소되었다”며 “행사 한 달가량을 앞두고 당황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민원 등으로 인해 성소수자 관련 행사가 공공장소에서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최대 성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퍼레이드는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돼 을지로 2가·종각역 일대로 장소를 옮겼다. 2023년 당시 서울광장의 사용 여부를 심사하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에 참여한 이들은 “청소년들이 바르게 커야 하는 성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적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 등의 발언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는 오는 6월14일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할 예정인데 “서울광장은 사용 신청을 하지 않았고 장소를 고민 중”이다. 조직위는 지난해 퀴어퍼레이드 관련 토론회를 열기 위해 시민청을 임대했다가 취소당하기도 했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이러한 배제가 반복되며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나’에 대한 거부라고 느낄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잘살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할 것”이라며 “이런 행사에 공간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서울퀴어퍼레이드뿐만 아니라 전국의 퀴어 축제들이 매년 장소 대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사자들의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