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우진(25)의 당혹스러운 부상은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전력 구성에도 영향이 크다. 안우진에게 걸었던 조건부 기대는 의미가 없어졌다. 원점에서 다시 에이스 카드를 찾아야 한다.
이번 부상 전에도 안우진의 WBC 승선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학교 폭력 논란으로 인한 반대 여론을 먼저 극복해야 했다. 2023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 이후 2년 가까이 실전 등판이 없었다는 것도 고민이었다. 아무리 안우진이라도 올해 말 팀에 복귀해 1군에서 1~2경기라도 던져 봐야 대표팀도 믿고 뽑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있었다.
그런 선결 조건을 안고 있었지만, 대표팀은 안우진을 꾸준히 관찰했다. 승선 가능성을 차치하고라도, 안우진이 대표팀 에이스로 나서는 그림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왔다. 그만큼 안우진이 KBO리그에서 보여준 기량이 압도적이었다.
수술 전 안우진은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였다. 2022년 평균자책(2.11), 이닝(196이닝), 탈삼진(224삼진) 등 투수 주요 지표에서 각 구단 외국인 투수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23년에는 역대 최고 외국인 투수 중 1명으로 평가받는 에릭 페디와 함께 KBO리그를 양분했다. 안우진이 시즌 막판 부상 이탈하면서 결국 페디의 독주로 시즌은 끝이 났지만, 부상 전까지만 해도 둘은 막상막하 기량으로 서로 경쟁했다.
올 시즌 투고타저 바람을 두고 적잖은 국내 투수들이 준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2022~2023시즌 안우진만큼의 존재감은 냉정히 말해 없다. 5일 기준 평균자책 상위 1~4위가 모두 외국인 투수다. 지난해 부상에서 복귀한 KT 소형준이 2.89로 5위다. 탈삼진은 5위 안에 국내 선발이 아무도 없다. 최근까지 기복을 보였던 박세웅이 공동 6위다.
안우진을 향한 기대가 특히 컸던 건 구위로 상대를 윽박지를 수 있는 투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안우진은 2022~2023시즌 직구 평균 구속 153㎞ 이상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황당한 부상 직전 라이브 피칭에서도 최고 구속 156㎞를 던졌다. 올해 국내 선발 중 직구 평균 구속 150㎞ 이상은 아직 규정이닝을 못 채운 한화 문동주(151.7㎞), 두산 곽빈(150.8㎞) 정도다.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 중인 한국계 투수들이 대안이 될 수는 있다. 라일리 오브라이언(30·세인트루이스), 데인 더닝(31·애틀랜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오브라이언은 이번 시즌 불펜으로 23경기에 나와 28이닝 동안 평균자책 1.93으로 맹활약 중이다. 직구 대신 싱커를 주 무기로 던지는데 평균 구속이 157㎞다.

그러나 이들의 합류를 장담하기 어렵다. 오브라이언이나 더닝 본인도 자신이 내년 상황이 어떨지 아직 모른다. 대회가 열리는 내년 3월 이들이 어떤 팀에서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구단이 대회 참가를 거부할 수 있다. 30대 나이로 매년이 중요한데, 시즌 개막을 앞두고 국제대회에 나간다는 부담 또한 크다. 오브라이언은 32세가 되는 내후년에야 연봉 조정 자격을 얻는다. 더닝은 이번 시즌 성적이 썩 좋지 못해 애틀랜타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 둘 다 안정적인 신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안우진 대표팀 승선 고민은 시작도 전에 무의미해졌다. 대만 혹은 일본을 상대로 선발 마운드에 누구를 올릴지 현재로선 백지에 가깝다.
내년 WBC에서 대표팀을 이끌 류지현 감독은 6일 강인권 대표팀 수석코치, 전력 분석 담당 직원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15일 귀국 예정이다.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활약 중인 대만 투수들을 집중 점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