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까지 요구…도넘은 PEF 때리기 [시그널]

2025-12-14

국회가 국내 사모펀드(PEF) 규제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투자자 성명이나 보수 지급 같은 영업비밀까지 공개하라는 내용을 담으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모 투자의 비공개 원칙을 무시한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효율적인 기업 경영과 모험 투자 등 PEF의 순기능이 약화되고 해외 기관투자가를 통한 자금 유치도 막힐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PEF가 일반 기업과 해외 PEF보다 강한 규제를 받는 역차별 우려도 크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국회 정무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민병덕·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펀드의 출자자 이름과 출자비율 △수익률과 성과 보수 및 산정 방식 △펀드의 자산 구성과 부채비율을 일반에 공시하도록 했다.

PEF 운용사 입장에서도 자산 구성이나 부채비율, 보수와 산정 방식은 그 자체가 수익률과 연결되기 때문에 일반 기업의 영업비밀과 같다. 상법은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도록 돼 있는데 사모투자업을 한다는 이유로 PEF 운용사는 기업과 다른 잣대를 적용받는 셈이다. 실제 PEF 운용사가 조성한 펀드에 출자하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는 명단을 공개하지 말라고 계약서에 담아 엄격하게 요구한다. 자칫 국내에 운용사 인가를 받지 않는 대부분의 해외 PEF가 국내 PEF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20년 전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게 될 판이다.

이 때문에 검토보고서에서도 보수 지급 공시에 대해 적절성과 형평성(상장사 임원 보수와) 측면에서 부합하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자 성명 공시 역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에서 규제의 실효성이 낮은 반면 규제 이행 비용이 과도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정명호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규제가 설정되도록 국회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美·EU엔 없는 지분매각·볼트온 규제…"M&A, 외국계 놀이터 전락"

사모펀드(PEF) 규제 강화가 시행되더라도 다수의 해외 PEF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어 국내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해외 자본에 단물만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강도 높은 수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틈을 대형 해외 펀드들이 파고들어 국부 유출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개정안을 본 국내 한 중소 PEF 대표는 “규제 강화의 원인이 된 사건 자체가 해외 PEF 전략을 취했던 대형 PEF 때문이었는데 오히려 규제 강화는 국내 PEF에만 적용된다”면서 “토종 PEF들만 죽으라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논의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내에 PEF 업무집행사원(GP)으로 등록한 PEF 운용사에 적용한다. 반면 외국계 PEF는 하는 업무는 국내 PEF와 같지만 외국 법인으로 등록하고 국내 기관투자가를 직접 유치하지 않는 역외 펀드로 활동한다. 이들이 상장사에 투자하면 상법의 의무공개매수제 등은 적용받지만 자본시장법은 적용하기 어렵다.

차입한도 순자산의 200%로 축소

정무위가 논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과도한 부채로 기업회생까지 간 홈플러스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차입 투자를 막는 데 중점을 뒀다. 펀드 순자산 기준 부채비율을 400%에서 200%로 낮췄고 차입 계약 내용을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부채비율에 투자 기업의 부채까지 합산해 계산하게 한 법안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기관 전용 PEF의 순자산 기준 평균 부채비율은 38.7%다. 지난해 기준 일반 PEF의 99.7%, 기관 전용 PEF의 97.5%가 차입 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 즉 하나의 사례로 인해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라는 뜻이다. 금융위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에서 “차입 비율 제한으로 국내 PEF가 해외에 대체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당국은 만약 PEF의 차입 비율이 200%를 초과한다면 그 사유와 향후 관리 방안을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SK쉴더스는 해외 PEF가 차입 매수를 최대한 이용한 사례다. 맥쿼리 컨소시엄은 2018년 SK쉴더스(당시 ADT캡스) 지분 36.9%를 5000억 원에 인수한 뒤 2023년 EQT파트너스에 2조 원에 매각했다. SK쉴더스의 부채 총계는 2019년 611억 원에서 2022년 2조 9031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EQT파트너스가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빌린 2조 3000억 원은 올해 5월 SK쉴더스의 차입금으로 넘어가면서 부채비율이 31%에서 876%로 늘었다. SPC와 SK쉴더스 간 합병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간 이자비용은 당기순이익에 맞먹는 120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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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의무보유에 추가 인수 금지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는 PEF가 회사 경영권 지분에 투자할 경우 해당 지분을 5년 이상 의무 보유하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계 PEF 운용사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2023년 화장품 용기 제조사 삼화를 3000억 원에 인수한 지 1년 8개월 만에 9000억 원에 매각했다. 업황에 따라 빠르게 기업을 재매각하는 PEF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 우리나라 기관 전용 PEF의 투자 기업 주식 보유 기간은 3.8년이며 오히려 기존 법은 PEF가 너무 오래 기업을 지배하지 않도록 투자 기간을 15년 이내로 제한한다.

아울러 개정안은 PEF가 투자한 기업이 당국의 승인 없이는 제3의 기업을 추가 인수하지 못하도록 했다. PEF의 대표적인 전략은 동종 업체를 인수합병(볼트온 전략)해 중복된 기능을 하나로 줄이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보는 것이다. 미국계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국내에서 폐기물 기업을 잇따라 사모아 국내 1위인 에코비트로 불린 뒤 IMM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했다. 정작 IMM PE는 같은 전략을 취하기 어렵게 된다.

홈플사태 막겠다며 韓PEF만 발목

펀드별로 출자자와 출자 비율, 투자 자산을 공시하게 한 내용도 논란이다. 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출자자 공개를 금지하는 이유는 운용사가 기관투자가에 투자 기회를 선별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라면서 “같은 펀드 안에서 더 많은 금액을 출자해 수익 규모를 늘리고 비용과 지위 면에서 유리한 출자자가 되려는 기관투자가 간 경쟁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구태여 국내 PEF에 출자하지 않고 해외 PEF에 출자해 국내에 투자하면 된다. 정명호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출자자 공시로 익명성 보장을 원하는 (기관)투자가의 투자 유인이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광수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PEF의 투자가 잘못될 경우 투자 기업은 임직원과 거래 업체까지 다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그 피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이 올바르거나 필요한 내용을 짚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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