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홈 파티’)
8년 만에 소설집을 낸 김애란이 던지는 질문이다. 7편의 소설을 잇는 키워드는 ‘공간’. ‘홈 파티’ 속 무명배우 이연은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는 이들의 모임에 초대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려온 오대표의 집안으로 걸어 들어가 집안 곳곳에 놓인 가구와 인테리어가 어떻게 ‘서사적 윤기’를 자아내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며, 자신과 오대표 사이에 그어진 미세한 금을 매 순간 의식한다.
이렇게 공간은 때론 집주인의 미감과 여유를 짐작하게 하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곳이거나(‘홈 파티’), 값싼 물가와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살기를 가능하게 하는 해외의 단독주택(‘숲속 작은 집’), 혹은 정성 들여가꿔왔지만 이제는 새 집주인에게 비워줘야 하는 전셋집(‘좋은 이웃’)이다.
이들 공간에서는 거짓말로 숨길 수 없는 윤기부터 애써 윤기를 낼 때 알게 되는 자신의 욕망, 사소한 이유로 가까운 이와의 괴리를 발견할 때 느끼는 수치까지, 날 것의 감정이 드러난다. 우리 사회 '방 한 칸'이 갖는 의미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묘사해 온 김애란의 탁월한 재현능력과 탄산처럼 솟아오르는 문체가 만나 독자의 아픈 곳을 쿡쿡 쑤신다.
서로 다른 삶의 기준이 맞부딪치는 가운데 ‘좋은 이웃’ 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김애란은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공동체ㆍ이웃ㆍ연대 같은 말을 정직하게 발설하며, 당연하고도 익숙한 이 가치가 최근 몇 년간 어떻게 부서져왔는지를 통렬히 실감하게 한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온다”는 게 저자의 말.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언제나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게 되어 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며 ”좋은 예술은 공동체를 제 마음과 대면하게 함으로써 의식의 부패를 막는 약이기에, 우리의 안녕을 위해 김애란의 안녕을 기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썼다. 이 비극은 『비행운』(2012)의 테마인 '불운' 이나 『바깥은 여름』(2017)의 '상실'과도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