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름 6㎝의 묵직한 핑크색, 파란색, 형광색의 형형색색 공들이 널따란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째 골프 같기는 한데 뭔가 다르다. 하지만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즐거움에 아련히 나의 시선이 끌린다.
한 17년 전, 오래된 이야기다.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던 필자는 여의도 63빌딩 옆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파크골프장에서 파크골프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었다. 20여 명의 파크골프 동호인 중에는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들이 함께 있었다. 일반 골프를 즐기기 어려운 장애인들과 노인들도, 주변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공원형 골프가 있다는 걸 프로그램에서 말하고 싶었던 거다.
2025년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파크골프장 수는 411개,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스크린 파크골프장도 100여 개나 된다. 예전에 파크골프장의 숫자가 손에 몇 개 꼽히던 시절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인 수치다. 어느 분야에서든 앞에 ‘K’자를 붙이며 세계 최고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파크골프 역시 종주국인 일본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었다.

사실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와 비슷한 듯 다르지만 아주 매력적인 운동이다. 홀마다 지정 타수가 있는 18홀 경기를 단지 골프채 하나와 큼직한 공으로 1시간 남짓 산책하며 가볍게 걸으며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그진행비도 놀라울 정도로 저렴해, 파크골프 마니아들은 웃음이 귀에 걸리고 애호가들은 꼬리를 물며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크골프가 내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이들과 어르신을 모시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스포츠라는 것이다. 과연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얼마나 있을까?

2008년 더운 여름, 동탄의 한 파크골프장에서 나는 테스트를 치르고 있었다. 당시 사단법인 한국파크골프협회의 ‘파크골프 3급 지도자’ 시험. 사람들이 파크골프가 뭔지도 잘 모르는 시절 얼떨결에 지도자 자격을 땄다. 내친김에 2009년에는 일본 북해도에서 진행된 국민생활체육 전국파크골프연합회의 해외 연수과정도 참여했다. 이 역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일환이었지만, 겸사겸사 국제부에 참가하여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2등 메달을 수상했다. 파크골프와 만나 열렬히 심취한 시절이었다.

요즘은 작은 공원이나 천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것이 파크골프장이다. 한 방송사에서는 경기를 중계하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유튜브에도 콘텐츠가 넘쳐나고 장비, 용품과 의류도 다양하다. 또한 각종 대회도 열리고 협회 단위에서는 프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예전 동네서 뛰어다니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귀여운 꼬마를, 잘 자란 성년이 되고 나서 만나 조금은 멋쩍게 인사하게 된 느낌을 파크골프에게서 가지게 됐다. 그의 성장만 지켜보는 것을 넘어서서 동심동덕(同心同德)을 해보려 한다. 내일은 베란다 창고에 깊이 처박혀있는 먼지 쌓인 그 옛날 파크골프채를 꺼내서 깨끗하게 닦는 것으로 벅찬 만남을 기대하련다.








